표면적으로 우편투표 부정 가능성 거론했지만
"파멸적 경제지표 물타기 하려는 필사적 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트윗을 통해 11월 대선 연기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가 비판이 거세자 곧장 철회했다. 하지만 의회의 동의 없이 대선 연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모를 리 없는 그가 폭탄발언을 한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는 우편투표의 부정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심각한 경기지표와 민심 이반으로 재선 가능성이 낮아지자 아예 대선 판 자체를 흔들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의지로 대선을 미룰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전국단위 투표일 결정권은 의회에 있기 때문이다. 미 헌법 제2조 1항 4호는 "의회는 선거인의 투표일자를 결정하고 이 날짜는 전역에서 동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 연방법에는 대선을 4년마다 11월 첫째 화요일에 치르도록 돼 있다. 친정인 공화당에서조차 "전쟁이나 경기침체나 내전을 거치면서도 연방 차원의 일정이 잡힌 선거를 제때에 치르지 못한 적은 없다"(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얘기가 나온다.
설령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선 통과 가능성이 있다고 쳐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 통과는 불가능하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기 주장이 담긴 트윗글을 접한 직후 헌법 조항을 거론하며 "투표일 결정 권한은 의회에 있다"고 못 박았다. 친(親)트럼프 성향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도 "선거 연기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도발'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선 재선 실패에 대한 조바심으로 분석하는 의견이 많다. 앨런 릭트먼 아메리칸대 교수는 정치 전문매체 더힐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행동은 자신의 자존감을 달래려는 행위와 관계가 있다"면서 "그의 (대선 연기) 주장은 재선에 실패했을 때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화당 정치자금의 '큰손'인 댄 에버하트는 "트럼프의 고전적 수법"이라며 "기이한 이야기를 꺼내 모두의 관심을 '끔찍한 경제뉴스'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릴리 애덤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대변인도 "트럼프의 이번 위협은 파멸적인 경제 지표를 물타기 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각종 '경제 지표'를 최우선 재선 전략으로 여겨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보건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봉쇄 해제ㆍ경제 재개를 서두른 이유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는 전분기 대비 -32.9%로 73년 만에 최악이었다. 그렇잖아도 코로나19 부실 대응과 인종차별 반대 시위 등의 여파로 주요 경합지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경제 지표마저 바닥을 친 건 설상가상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대선 불복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선 연기 주장을 명분쌓기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코로나19 상황서 우편투표 확대가 불가피한데도 지속적으로 이를 문제삼는 건 결국 대선 패배 이후를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뜬금없는 이날 폭탄발언이 지지층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계산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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