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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시대 교회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들

입력
2020.07.29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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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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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중세는 타락한 교회로, 흑사병으로 재앙을 겪었다. 성직자들이 감염자들을 외면하고 도망가기에 바빴는데, 글랜드 요크에는 성직자 대부분이 도망가는 바람에 임종하는 신자들의 장례미사를 집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을 저버리는 성직자들로 인해 신자들은 깊은 회의에 빠졌고, 유럽은 신본이 아닌 인본주의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교회의 몽상에서 사람들이 깨어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예수 운동을 곧 이은 초대교회는 달랐다. 당시 황제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안토니우스 역병’은 로마제국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앗아갔다. 황제는 이름만 아니라 목숨도 이 역병에 내주었다. 로마는 249년부터 또다시 감염병으로 타격을 입는다. 단 하루 만에 5,000명이 죽었다는 보고도 있다. 지도자들은 도피하기 바빴고 철학자들은 세계가 늙어가며 미덕은 메말랐다고 주절거렸다. 교회가 바로 이 로마시대에 출발했다. 시작부터 제국의 박해가 혹독했지만 313년, 놀랍게도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했다. 그때부터 교회는 날개를 달았다.

기독교 공인이 있기 전, 세상이 역병으로 흉흉한 가운데 교회는 의연히 전염병에 대처했다. 디오니시우스의 증언에 의하면, 그 곤고한 시기가 교회에는 오히려 상상할 수도 없는 기쁨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교회가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돌볼 수 있던 기간이었기 때문이었다. 251년에 주교 키프리안은 역병의 시기가 사람들의 공의를 검증하고 인류 정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감염자들이 쫓겨나고 심지어 죽기도 전에 내버려졌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았고 심지어 자신이 감염되어도 기쁨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락탄티우스는 교회가 역병으로 죽은 자들의 장례를 정성껏 치러주자 이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기를 거치며 로마 사회의 기독교 인구 비율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역병의 위기가 오히려 교회 확장의 기회를 준 것이다.

어두웠던 중세를 뚫고, 교회에는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세상에는 여전히 감염병이 찾아왔다. 1527년 7월 독일 비텐베르크에 흑사병이 돌자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다. 하지만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환자들을 집으로 대려와 돌보아 주었으며, 자기 자녀가 6명이었지만 고아가 된 6명의 아이를 입양까지 했다. 버려진 도시에 남아 병자를 돌보고 목회자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루터는 이 말씀을 기억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한일서 3:16).

현 코로나 위기에 교회를 너무 쉽게 연루시키는 것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이 위기를 대처하는 교회도 너무 소극적이다. 교회가 목숨까지 걸고 환자를 돌볼 필요도 없는 시대다. 하지만 이 사태로 인해 뒤처지고 위축되며 궁핍해진 사람들이 교회의 눈에는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희생할 마음이 있다면 안 보일 수가 없다. 작금의 위기는 예수의 이름이 존귀케 될 최적의 기회일 것이다. (이 글은 근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개최된 코로나 관련 신학특강에서 김용국 교회사 교수님이 발표한 내용에 바탕을 두었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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