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박원순 변호 받았던 권인숙의 '절망' 그리고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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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박원순 변호 받았던 권인숙의 '절망' 그리고 일침

입력
2020.07.27 16:40
수정
2020.07.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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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은 ‘권인숙의 절망’에 답할 수 있을까.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국회 교육ㆍ사회ㆍ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내놓은 뼈아픈 지적들이 여권에서 공명하고 있다.

권 의원은 35년 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다. 당시 변호인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었다. 박 전 시장의 사망 앞에 가장 고심이 깊었을 권 의원은 정치권을 향해 “고위공직자들은 바로 자신이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방관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권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서서 가장 지적하고 싶었던 점이 바로 ‘고위공직자의 내면화의 부재’였다고 한다.

권 의원의 담담하나 뼈아픈 발언이 연일 회자되는 가운데, 온라인 공간에선 권 의원을 향한 백래시(backlashㆍ반격) 성격의 항의와 응원이 뒤섞여 잇따르고 있다.

24일 대정부질문 질의자로 나선 권 의원은 거두절미하고 박 전 시장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권 의원은 “고인이 되신 박원순 전 시장은 제가 본 어떤 공직자보다 성평등 정책을 열심히 펼치는 분이었다”면서도 “박 전 시장마저 위력에 의한 성추행 의혹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 앞에 절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권 의원은 “저는 성평등을 국가통치 원리로 작동시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 국회에 들어왔는데, 계속된 선출직 고위 공직자들의 성비위 사건으로 정부와 여당은 20, 30대 여성들을 포함해 많은 국민에게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고위공직자들은 바로 자신이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방관했다”고 했다.

이에 정세균 국무총리가 "(우리가) 문화적으로 크게 (성범죄를) 죄악시하지 않는 아주 후진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다"며 "소통과 교육을 통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호응하기도 했다.

권 의원과 보좌진은 당초 디지털 성범죄 해결 방안을 주로 질의할 예정이었다가 주제를 바꿨다고 한다. 여권이 박 전 시장의 '이름'을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던 상황에서 초선 의원으로서 여당 내부를 겨냥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권 의원은 ‘권력자들의 내면화’ 문제를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권 의원 사무실 관계자는 “공직자 스스로의 행동 방식과 가치관을 치열하게 바꾸지 않으면 좋은 대책과 기구를 만들어도 제대로 기능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이번 질의를 통해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의원이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을 불러 ‘2019년 경찰청 성희롱 예방교육’ 사건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경 승진 예정자들이 성희롱 예방교육을 성실하게 받기는커녕 강사를 조롱하거나 반발한 사건을 두고 권 의원은 “고위공직자들이 이런 수준이면 교육이 무슨 소용이냐”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날 이후 권 의원의 페이스북에는 공격적 항의도 잇따랐다. “박 전 시장 건은 아직 의혹인데, 의혹에 왜 절망을 하냐” “자칭 페미들은 자기 반성이나 하라” “내부 총질 작작하고 차라리 탈당을 해라” 등의 비아냥이었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여러 가지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라면서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적지 않아 여러 관련 법안 발의 등 후속 조치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했다.

권 의원은 최근 △대학 내에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고, 대학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위원과 학생이 추천하는 외부위원을 포함하도록 하는 법안(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범죄 수사를 받는 교원을 신속하게 직위 해제하도록 하는 법안(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발의한 상태다.


◇다음은 권 의원의 24일 대정부질문 발언 전문

<모두발언> 존경하는 박병석 국회의장님,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그리고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여러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권인숙 의원입니다. 고인이 되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35년 전 제가 피해자였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변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어떤 공직자보다 성평등 정책을 열심히 펼치는 분이었습니다.

국민들도 그러하시겠지만, 저는 더욱 박원순 전 시장마저 위력에 의한 성추행 의혹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 앞에 절망했습니다.

저는 성평등을 국가통치 원리로 작동시키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국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선출직 고위공직자들의 성비위 사건으로 정부와 여당은 이삼십대 여성들을 포함, 많은 국민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미투 이후 조직과 권력의 불평등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많았고,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들은 바로 자신이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방관했습니다.

자신의 인식과 가치관, 행동방식을 구체적으로 바꾸고, 이를 조직문화 속에서 어떻게 녹여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고, 심지어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그 현실이 참혹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n번방 사건을 통해 지옥보다 더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젊은 여성에게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분노와 불안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어린 청소년이 디지털 성폭력 가해를 부추기는 또래문화에 가담하기는 또 얼마나 쉬운지요.

이 문제에 온 힘을 기울여 책임 있게 선도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안녕과 미래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본 의원은 오늘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성폭력 근절에 대응해야 함을 강조하며,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마무리 발언> 지난 4월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가가 여성과 아동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 아이와 여성들이 피해영상물에 노출되어 불안과 고통에 신음하지 않도록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고위공직자가 성비위 사건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 여당은 고위 공직자의 성범죄 방지를 위해 현실 가능한 책임 있는 조치를 내놔야 할 것입니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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