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우아했던 멜라니, 천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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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우아했던 멜라니, 천상으로

입력
2020.07.27 15:52
수정
2020.07.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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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황금기를 장식했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1963년 모습이다. AP 연합뉴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등에 출연하며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한 전설적인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104세를 일기로 숨졌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연예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 등에 따르면 하빌랜드는 60년 넘게 살아온 프랑스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191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하빌랜드는 영화 ‘한 여름 밤의 꿈’(1935)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캡틴 블러드’(1935)와 ‘로빈 훗의 모험’(1938) 등에 출연하며 입지를 굳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의 친구이자 연적인 멜라니를 연기하며 이름과 얼굴을 널리 알렸다.

도발적인 스칼렛과 다른 차분한 성격의 멜라니는 이후 하빌랜드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하빌랜드는 모든 여배우들이 선망하던 스칼렛 대신 멜라니 역할을 자원했는데 “고상하고 존중 받을 만한 성품을 연기할 가치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인은 지적인 미모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연기 덕에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1946)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1949)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품에 안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할리우드리포터 역시 고인을 '할리우드 황금기의 지적인 스타'라 평가했다. 하빌랜드는 생전 “나쁜 여자 역할은 지루하다. 여배우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선한 여자 역할을 운 좋게도 많이 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강단 있는 행동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1940년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대 영화사 워너브러더스를 상대로 한 전속계약 관련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하빌랜드가 승소하면서 노예계약이나 다름없었던 할리우드 전속계약 관행이 사라졌다. 하빌랜드는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연기를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변 우려와 달리 이후 배우 이력을 이어갔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1950년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1949)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동생 조앤 폰테인(1917~2013)과의 갈등도 유명하다. 하빌랜드와 달리 폰테인은 도발적이고 감성적 이미지로 스타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충돌했던 두 사람은 할리우드에서도 자매 라이벌이었다. 폰테인이 ‘서스피션’(1941)으로 먼저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하빌랜드의 축하를 무시했다. 하빌랜드도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로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했다.

당대 스타 에롤 플린(1909~1959)과의 염문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로빈 훗의 모험’ 등에서 호흡을 맞추며 열애설이 나돌았으나 매번 부인했다. 하빌랜드는 기혼인 플린이 자신에게 청혼한 적은 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선 플린의 지나친 음주와 여성편력이 걸림돌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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