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 이념ㆍ체제' 대결? 복원 초점?
反中 정서 자극 위해? 극단적? 용법 구사 비판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중국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대중 관여정책’을 실패로 깎아내린 것은 사실상 신(新) 냉전 선언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닉슨 전 대통령을 기리는 장소(닉슨 도서관)에서 그가 1972년 중국 방문을 통해 열었던 미중 화해의 ‘데탕트 시대’를 사실상 부정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폼페이오 장관은 줄곧 미소 냉전을 연상시키는 ‘공산주의 대 자유 진영’간 대결 구도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닉슨 희망한 中 변화 없다... 괴물 만들어"
연설 장소부터 상징적이다. 닉슨 도서관은 그가 나고 자란 생가에 세워진 곳으로 닉슨 전 대통령 부부 묘지와 업적을 기린 박물관이 함께 있다. 내년은 닉슨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한 헨리 키신저가 1971년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미중 수교의 물꼬를 턴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던 미국은 1969년 '닉슨 독트린'으로 베트남에서 미군을 빼낸 뒤 미소 갈등을 틈타 중국과 손을 잡는 과감한 전략으로 냉전의 한 축을 무너뜨렸다. 키신저 방문 이듬해인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만나 양국의 적대관계 청산, 외교관계 수립 등을 논의하고 내놓은 공동성명은 오늘날 주요 2개국(G2)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됐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닉슨의 베이징 방문으로 우리의 관여 전략이 시작됐다”면서 “그러나 그런 정책은 그가 희망했던 중국 내부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중국 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쇠락한 경제만 키워줬다는 것이다. 그는 한 술 더 떠 “닉슨은 중국 공산당에 문을 열어주면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는데, 실제 그렇게 됐다”며 데탕트 시대가 중국 공산당이란 괴물을 키웠다는 식의 악담까지 퍼부었다. 50년 평화 체제는 이제 끝날 때가 됐다는 의미다.
폼페이오, 新냉전 키신저 자임
폼페이오는 “근본적ㆍ정치적ㆍ이념적 차이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면서 “자유 세계는 새로운 독재에 승리해야만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냉전 시대의 이념 및 체제 대결을 소환한 것이다. 그는 옛 소련을 향해 “믿어라, 하지만 검증하라”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표어를 빌려와 “중국에 대해선 우리는 믿지 말고 검증해야 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연 설계자는 키신저였다. 닉슨 1기 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그는 닉슨 재선 후 국무장관까지 겸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 전면에 나선 폼페이오의 이날 연설은 ‘신 냉전의 키신저’를 자임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미중 협력 성과는 외면 ..."전략 일관성 없다" 비판도
하지만 냉전의 유산인 체제 대결 수사가 미국의 일관된 대중 전략인지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미소간 경제적ㆍ인적 교류가 거의 없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미중 교역이 단절되면 미국 역시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폼페이오의 냉전식 화법을 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캠프가 도널드 트럼프 캠프에 무역 합의 이행 문제를 추궁할 여지를 줬다”고 평가했다. 외교적으로 중국을 때리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무역 합의를 깨지 않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중성을 겨냥할 먹잇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의 연설이 중국을 향한 적대감만 강조한 채 양국의 오랜 협력 성과는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철 지난 냉전 논리까지 끌어들인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간 워싱턴포스트 이날 사설에서 아예 “트럼프 정부에는 일관된 대중 전략이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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