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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 넓어서 애 잘 낳겠네"... 박원순 사건이 '내 일' 같다는 국회 참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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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 넓어서 애 잘 낳겠네"... 박원순 사건이 '내 일' 같다는 국회 참모들

입력
2020.07.20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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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뉴스1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뉴스1


“국회에서 ‘잡일은 여자들 일’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10년차 국회의원 비서관 A씨)

“‘너는 골반이 넓어서 애 잘 낳겠다’ 같은 성희롱 발언을 여전히 들어요.”(3년차 국회의원 비서 B씨)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추행 사건을 바라보는 국회 보좌관 ㆍ비서관ㆍ비서들은 착잡함을 토로했다. 박 전 시장 사건 이후 한국일보는 국회 남녀 보좌진 7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서울시에서 벌어진 일이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 전 시장 등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연이어 일으킨 성추문이 '일부 제왕적 자치단체장들의 우발적 비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전 시장 사건은 '권력자들이 여성을 비롯한 약자를 얼마나 깔보고 무시하는가'를 드러낸 파편에 불과하다고 인터뷰 대상자들은 입을 모았다. 자치단체장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지자체보단 조금 낫겠으나, 국회 역시 성차별ㆍ성폭력의 안전 지대가 아니라고도 했다.

국회 보좌진의 인적 구성부터 남성 중심적이다. 19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 보좌진(4~9급) 2,214명 중 여성은 664명(30%)에 불과하다. 여성 보좌진 중 48.9%는 8, 9급의 하위직이다. 반면 남성 보좌진 중 8, 9급 비율은 15.3%였다.

3년차 여성 비서 C씨는 “국회의원 1명당 배치되는 보좌진 9명 중 여성이 1명뿐인 의원실이 적지 않고, 그나마 여성은 9급 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9급 비서는 통상 의원실 방문인 안내, 전화 응대, 우편물 정리 등을 담당한다. '커피 타고 간식 챙기기'를 9급 비서에게 전담시킨 의원실도 여전히 꽤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8, 9급 여성 비서들은 여전히 존중받지 못한다. C씨는 “치마 입고 출근한 날 ‘남자친구랑 좋은 곳에 가서 자나 봐’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폐쇄적인 국회 문화 때문에 문제 삼기도 어려워 속앓이만 한다”고 말했다. 신입 여성 비서들의 외모 평가가 비밀리에 공유되기도 한다.

여성 보좌진은 아무리 큰 꿈을 품어도 '만년 비서' 취급 받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 입법ㆍ정책 보좌 업무는 경력이나 나이 등과 무관하게 남성 몫으로 돌아가곤 한다. 여성 비서 D씨는 “정책 업무를 하고 싶어 국회에 왔는데, 3년이 지나도록 경험도 해보지 못했다”면서 “국회 경력이 비슷한 남자 동료 비서가 정책 질의서를 쓰는 걸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30대 초반의 남성 비서 E씨의 얘기. “총선을 비롯한 선거 때는 유권자들이 좋아한다면서 여성 보좌진을 선호하지만, 의원이 재선, 3선이 이상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여성들을 해고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21대 국회의 4급 보좌관 중 여성은 7.7%에 불과하다.

여성 보좌진이 유난히 무능해서라기 보다 의원회관의 '유리 천장'이 그 만큼 두껍기 때문이다. 정치 다양성 확대를 위한 '여의도 유리 천장 깨기' 운동이 언론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그 수혜를 누린 건 오직 여성 의원들이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여의도에는 여성 보좌진을 뽑지 말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남성 의원이 '사고 칠' 가능성을 고려해 여성을 사전에 업무에서 배제시키자는 뜻에서다. 사진은 14일 정문에서 바라본 국회 본청의 모습. 뉴스1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여의도에는 여성 보좌진을 뽑지 말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남성 의원이 '사고 칠' 가능성을 고려해 여성을 사전에 업무에서 배제시키자는 뜻에서다. 사진은 14일 정문에서 바라본 국회 본청의 모습. 뉴스1


박 전 시장 사건 이후 여의도에선 여성 보좌진을 뽑지 말자는 ‘펜스룰’이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다. 특히 의원 수행 비서를 대부분 남성에게 맡기는 건 '의원의 정치 인생을 염려하기 때문'이란다. "술 마신 의원이 여성 비서를 대상으로 사고를 칠까 봐 여성에겐 웬만하면 수행이나 정무 보좌를 맡기지 않는다"(여성 비서관 F씨)는 것이다. 남성 의원의 성폭력 가능성을 '디폴트'로 설정하고, 남성 의원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상정한 발상이다.

국회 보좌진 채용 시즌은 여성들에게 유난히 가혹하다. 생계 때문에 급수를 낮춰 다른 의원실에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4년간 비서관으로 일하다 얼마 전 국회를 떠난 여성 E씨는 "'우리 방의 보좌관, 비서관 중 여성 몫은 단 1명이니, 급수를 내려서 오라'고 대놓고 말한 의원도 있었다"고 했다. 거꾸로 '비서관, 보좌관으로 진급한 여성은 상종 못할 독종'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 정부를 견제하고 때로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헌법기관이다. 스스로 성차별 문화에 젖어 있는 국회가 정부와 지자체 개혁하거나 쓴 소리를 할 순 없을 것이다.


양진하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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