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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내려와 즐겼다는 전설의 쌍화차” 전통찻집 10여곳 옹기종기

입력
2020.07.17 11:5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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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전북 정읍 쌍화차거리


정읍 쌍화차거리 초입에 대형 곱돌 찻잔 모형이 세워져 있다.

정읍 쌍화차거리 초입에 대형 곱돌 찻잔 모형이 세워져 있다.

전북 정읍은 노령산맥 자락에 섬진강 물줄기가 시작하는 옥정호와 동진강에 접해 있어 차(茶)와 약초 재배에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동국여지승람 등 옛 문헌에는 정읍의 토산품으로 차가 기록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품질이 뛰어나 왕실에 진상되거나 약제로 활용했다고 한다. 차 중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쌍화차 문화가 전성했다. 이는 쌍화차의 주재료인 숙지황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숙지황과 경옥고의 주재료인 지황은 정읍시 옹동면의 특산물이다.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지황의 뿌리를 쪄서 만든 숙지황이 쌍화차의 주재료다. 숙지황에 당귀, 천궁, 작약 등 20여가지의 한약재를 달인 게 쌍화차다. 옛날 임금의 피로 해소를 위해 어의가 만들었다는 쌍화탕(雙和湯)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부족한 기운을 보충한다는 의미를 담은 쌍화차는 몸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보양차로 잘 알려져 있다.

정읍 시내에서 관공서가 밀집한 장명동 일대를 걷다보면 쌍화차거리를 만난다. 정읍경찰서에서 세무서까지 이어지는 350m 남짓한 길이다. 정읍의 자랑거리인 구경(九景) 중 하나로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다. 길가 양쪽에는 모두 13곳의 전통찻집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이곳 찻집은 80년대부터 한두 곳씩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전북 정읍세무서 주차장 옆으로 늘어선 쌍화차 전문점들. 관공서가 밀집한 장명동 일대는 1980년대부터 전통찻집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정읍경찰서-세무서까지 350m 구간에 13곳의 쌍화차 전문점이 성업중이다. 쌍화차거리는 정읍구경(九景) 중 하나로 꼽힌다.

전북 정읍세무서 주차장 옆으로 늘어선 쌍화차 전문점들. 관공서가 밀집한 장명동 일대는 1980년대부터 전통찻집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정읍경찰서-세무서까지 350m 구간에 13곳의 쌍화차 전문점이 성업중이다. 쌍화차거리는 정읍구경(九景) 중 하나로 꼽힌다.


쌍화차거리 중앙에 설치된 전통찻집 안내판.

쌍화차거리 중앙에 설치된 전통찻집 안내판.

쌍화차거리에 들어서면 초입에 이곳이 쌍화차거리임을 보여주는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눈길을 끈다. 이 조형물은 쌍화차를 끓여 내는 곱돌 찻잔 모형이다. 이곳부터 다소니, 차밥나무, 연쌍화탕, 초모, 궁쌍화탕, 다심, 자연이래쌍화탕, 청담, 모두랑쌍화탕, 인사동 등 전통찻집이 이어진다. 인사동 찻집 길 건너편 장명동주민센터 앞에는 대형 약탕기와 쌍화차에 들어가는 약재 효능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골목길에서는 특유의 쌍화차 향이 코를 자극한다. 거리는 번잡스럽지 않은 소박함과 편안함을 준다. 부모와 함께 찾아오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거리에서 만난 강미라(47)씨는 "내장산 단풍으로 유명한 정읍에 최근 쌍화차거리가 꽤나 알려져 한번쯤 오고 싶었는데, 기회가 돼 가족과 함께 찾았다"며 "쌍화차 향기와 오밀조밀 붙은 건물들이 자아내는 정취가 푸근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장명동주민센터에서 정읍세무서 방향으로 쌍화차거리 중앙엔 '전설의 쌍화차거리'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신선이 내려와 쌍화차를 마시면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을 지나 시청 쪽으로 방향을 틀면 다선, 녹두꽃쌍화탕, 다인촌이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 쌍화차거리에 찻집이 늘어난 것은 쌍화탕을 찾는 손님이 많아서다. 쌍화차거리 외에도 정읍 시내에만 쌍화차 전문점이 60여 곳이나 된다.

정읍의 웬만한 찻집에서 쌍화차를 시키면 가래떡과 제철과일 등 다양한 주전부리가 나온다.

정읍의 웬만한 찻집에서 쌍화차를 시키면 가래떡과 제철과일 등 다양한 주전부리가 나온다.


20여가지의 한약재를 달인 탕에 대추, 밤, 은행 등 고명을 넣어 만든 쌍화차.

20여가지의 한약재를 달인 탕에 대추, 밤, 은행 등 고명을 넣어 만든 쌍화차.

이곳에서 판매되는 쌍화차는 한약재와 밤, 대추, 견과류가 들어간 전통 쌍화탕이다. 1970~80년 무렵 찻잔에 나오던 쌍화차는 인스턴트 티백에 계란 노른자를 띄워 고급화한 것이지만, 쌍화차거리의 쌍화탕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방법을 고수했거나, 개량해 10시간 이상 고아낸 것들이다. 쌍화차거리가 '웰빙차 거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

쌍화차거리에서 만나는 쌍화차의 특징은 일반 찻잔이 아닌 뜨겁게 달군 곱돌 잔이 나온다는 점이다. 묵직한 돌잔의 쌍화차 한잔 마시고 나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쌍화차에는 대추, 밤, 은행 등 푸짐한 고명이 들어가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쌍화차 만드는 방법이 찻집마다 다르고 개성 있는 인테리어, 차와 함께 나오는 다양한 주전부리는 찾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황토와 기와로 안을 꾸민 궁쌍화탕에서는 한옥의 옛정취를 느낄 수 있고, 다선 찻집에서는 발효쌍화차를 맛볼 수 있다. 다소니는 홍삼조청과 호박식혜가 따라 나온다. 이곳의 대추차, 수제요거트도 젊은이 사이서 인기가 높다. 자연이래쌍화탕은 쌍화차거리에서 유일하게 '계란동동 수란 쌍화탕'을 맛볼 수 있다.

전통미 잘 살린 인테리어로 인기가 높은 녹두꽃쌍화탕 찻집.

전통미 잘 살린 인테리어로 인기가 높은 녹두꽃쌍화탕 찻집.


노상환 녹두꽃쌍화탕 사장이 주방에서 쌍화차를 끓이고 있다.

노상환 녹두꽃쌍화탕 사장이 주방에서 쌍화차를 끓이고 있다.

정읍세무서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한 녹두꽃쌍화탕은 세련미와 전통미가 조화를 이루는, 남다른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지역을 비롯해 전국에서 오는 예술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가게 구석구석에 있는 소품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그것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찻집은 인공 감미료를 쓰지 않고 천연 약재를 고집한다. 단맛도 대추로 내는 식이다.

주인장은 무엇보다 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상환(55) 녹두꽃쌍화탕 사장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15가지 약재를 넣고 25시간 달여 만든다"며 "문을 연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쌍화탕에 쏟는 정성만큼은 가득하다"고 말했다. 노 사장은 "찻집마다 쌍화차에 들어가는 약재도 조금씩 다르고, 불의 세기를 달리해 10시간에서 많게는 50시간까지 달이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쌍화차거리 찻집 대부분은 차가 나오는 동안 손님들이 심심치 않도록 계절에 따라 대추, 호박씨, 깨강정, 바나나칩, 가래떡구이, 조청, 과일 등 주전부리를 덤으로 제공해 넉넉한 인심까지 느낄 수 있다. 광주에서 온 여행객 김진영(38)씨는 "쌍화차를 마시면서 정읍의 매력에 푹 빠졌다"며 "선물용 쌍화차도 잘 준비돼 있어 돌아가는 길도 즐겁다"고 활짝 웃었다.


'샘고을시장' 106년 전통 고스란히

106년 전통을 이어온 정읍 샘고을시장.

106년 전통을 이어온 정읍 샘고을시장.


낫, 괭이, 호미 등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민속대장간.

낫, 괭이, 호미 등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민속대장간.

쌍화차거리에서 정읍천변으로 5분정도 걸어가면 106년 전통의 샘고을시장과 마주한다. 1900년대 초에 형성돼 1914년 근대시장으로 등록됐다. 처음엔 5일장으로 운영됐으나 1978년 현대화사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시장 형태를 갖춰 상설화됐다. 샘고을시장은 전북 서남권의 교통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한때 인근의 순창, 고창, 부안과 전남 장성, 영광 주민까지 이용하는 상권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긴 전통을 가진 시장이다보니 자랑거리가 많다. 장구, 징, 꽹가리, 북 등 수제로 제작하는 전통악기점은 이곳 시장만의 특색이다. 낫, 괭이, 호미 등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민속대장간도 눈에 띈다. 재래식 방앗간, 목화솜 제작 틀 등의 색다른 볼거리가 많다. 먹거리도 풍부해 순대국밥집과 닭요리, 팥죽, 모시송편 등도 유명하다.

이 시장은 2014년 고등학교 지리교과서에 대한민국 6대 시장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입주해 있는 점포수만 300여개가 넘는다. 농축산물과 수산물, 건어물, 옷, 잡화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정읍시 관계자는 "방문객 편의를 위해 주차장을 새로 만들고 야시장 문을 열었다"며 "샘고을시장을 문화ㆍ관광ㆍ쇼핑이 공존하는 웰빙 먹거리 특화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읍 3대 거리 '명품거리'로 재탄생

지난해 11월 열린 쌍화차거리 축제에 주민과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쌍화차거리 축제에 주민과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정읍시는 낙후된 원도심 환경을 개선하고 발전 가능한 골목으로 거듭나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정읍 3대 거리인 쌍화차거리, 새암로, 우암태평로를 걷고 싶은 명품특화거리로 탈바꿈시켰다. 시민창안 300거리 프로젝트 사업으로 진행된 도시재생은 3개 거리를 지역 특성에 맞게 환경을 정비했다. '시민창안 300거리'는 시민들이 회의를 통해 직접 만든 이름이다. 샘고을시장, 시기성당, 우암태평로가 각각 100년이상 된 것을 의미한다.

3개 거리는 한 때 원도심을 대표하는 거리였으나 물리적 환경이 낙후되고 방문객 감소 등으로 점차 상권이 쇠퇴해지자 정읍시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새롭게 꾸민 거리다. 쌍화차 특화거리에는 쌍화차를 상징하는 경관 조형물과 안내사인, 고풍스런 이미지의 야간경관조명을 설치했다. 패션의 거리 새암로에는 기존 거리형태를 유지하면서 상징조형물과 조명등을 설치했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명품특화거리로 재탄생한 쌍화차거리.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명품특화거리로 재탄생한 쌍화차거리.

시기동 천주교회에서 샘고을시장을 연결하는 태평로는 빛과 청년 창업을 주제로 재생사업이 추진됐다. 시기성당은 비잔틴풍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절충형 건축물이다. 세련되고 우아한 색상의 조명이 웅장한 성당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도시미관을 해치는 각종 전선과 전주도 제거돼 걷는 데 한결 편해졌다. 시청 앞 기아자동차에서 중앙로까지 400m, 정읍세무서에서 새암로 120m 구간에서는 전선과 전주를 볼 수 없다. 이대우 도시재생과 팀장은 "지역 명품거리로 조성한 쌍화차거리 등 3대 거리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며 "침체된 원도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읍=글ㆍ사진 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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