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인 “4년간 성폭력 피해, 서울시 외면”
민주당ㆍ서울시, 실체 규명 노력 차단 안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폭력, 강제 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가 13일 어렵게 심경을 밝혔다. 법률대리인과 지원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대신 전한 그의 바람은 ‘인간다운 삶’ 그리고 ‘일상으로의 안전한 회복’이다. 박 전 시장의 사망과 함께 피해자를 향해 쏟아진 비난과 음모론, 신상 털기 같은 2차 가해는 성폭력 피해로 인한 상처만큼이나 그의 존엄성을 흔드는 일이었다.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거대한 위력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조직 안에서 홀로 싸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자리했다. 그 같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무려 4년이나 계속됐다는 게 피해자의 주장이다. 지난 5월 피해자가 법률대리인을 찾기 전까지 그는 서울시 내부에 성추행과 성희롱 등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조직은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원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 같은 사건의 흐름과 내용을 볼 때 전형적인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며,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의 요구는 사건의 진상 규명이다. 단체들은 “피고소인이 부재한다고 해서 실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며, 진상을 밝히는 것이 피해자 인권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특히 고소인이 고소장을 제출하자마자, 이 사실이 박 시장 측에 어떻게 전달됐는지도 밝혀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이날도 한 여당 의원은 공개적으로 “박 시장을 가해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는 피해자를 향해 ‘입을 닫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 상처를 안은 채 위태로운 생을 살라는 말이며, 성폭력의 재발 방지 의지조차 스스로 차단하는 말이다.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삶을 산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였던 고인의 일생에 비추어도 옳은 일이 아니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안전하게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길이다. 누구보다 더불어민주당이 적극 나서야 한다. 이해찬 대표가 사과했지만 소속 단체장의 성폭력 의혹이 세 번째 불거진 마당에 이 사건을 뭉갠다면 민주진보정당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미래통합당도 정쟁으로 활용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심산을 접고 피해자의 편에서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서울시의 피해 사실 은폐 여부 역시 반드시 밝혀야 할 대목이다. 제대로 조치만 취했어도 고인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남겨진 이들의 손에 쥐어진 사회적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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