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 해소되지 않았는데 속전속결 결정

1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1
사상 첫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지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서명자는 12일 오후 청와대 답변 기준(20만명) 세 배에 육박한다. 여기에는 여성 인권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던 박 시장 본인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점이 가장 크지만, 서울시가 모순된 행동으로 박 시장의 '마지막 길'에 대한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박 시장의 전 비서 성추행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는 5일간 서울시장(葬)을 결정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10일 유족과 서울시가 협의해 행정안전부 ‘정부의전편람’에 근거해 서울시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편람에는 “기관장(葬)은 기관의 장(長)이 재직 중 사망한 경우나 기관 업무 발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공무원이 사망하였을 때 거행한다”고 돼 있지만, 세세한 절차가 명시된 게 아니라서 내부 논의과정에서 결정됐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장례형식이 결정되면서 성추행 의혹 해소 문제는 간과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논의 과정을 일일이 설명을 못 드린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성추행 의혹 피소로 서울특별시장 반대 청원 관련) 논란을 예상할 수 있지만, 형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의혹만으로 9년간의 성과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서울시의 태도에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서울시가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고, 국민적 공감대를 모을 겨를도 없이 일사천리로 장례를 결정한 것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꼬집었다.
수도 서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시가 5일장에다 서울광장에 분향소까지 설치하며 사람을 끌어 모은 것도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이날까지 양일간 1만6,000여명(12일 오후 5시 기준)이 조문했다. 시는 지난 2월말부터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서울역 등 주요 도심에 집회 금지령을 내려 놓고 있다. 조문객 거리두기와 체온 측정, 손소독제 사용 등의 기본 방역수칙을 지키도록 했지만, 그 동안 코로나19 확산 우려 및 방역을 명분으로 시민들의 집회를 막아온 점에 비춰 보면 ‘내로남불’이란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서울시는 서울시치과의사회의 한 전시회,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의 총회, 민주노총 여의도 집회 등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행사에는 줄곧 강경한 대응을 유지해 왔다.
그랬던 서울시가 5일장에다 서울광장에 분향소까지 마련하자 일부 시민들은 “박원순 시장 5일장은 코로나가 비켜가나 봅니다”라고 비꼬았다. 또, 장례위원회가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13일 예정됐던 노제와 영결식을 온라인으로 치르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은 “코로나 정국에 노제까지 하려 했던 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가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조사 계획을 검토하지 못했다"며 진실 규명에 미온적으로 나온 점도 여론 일각의 비판을 부추겼다. 수사기관인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더라도 시는 불미스러운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최소한의 사실 관계 규명 및 자정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서울시 직원과 시민들은 “박 시장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칭하며,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강조해 왔다"며 "서정협 권한대행이 박 시장의 시정철학을 굳건히 이어가겠다고 약속한 만큼 적극적인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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