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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 먼저인 시대, 공정이 먼저인 세대

입력
2020.07.13 06: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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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에서부터 부동산 가격 급등 문제까지, 요즘 젊은 세대는 심난하다. 유례없는 경제 불황 속에서 오직 ‘취업’과 ‘내 집 마련’을 목표로 달려온 이들이 노력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은 기성세대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일까. 대한민국 젊은 세대를 관통하는 주요 화두가 어느새 위로에서 행복으로, 행복에서 공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사전적 의미에서 공정성(fairness)이란 특정 제도나 시스템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대상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정도를 뜻한다. 공정성에 대한 열망은 인간 본연의 특성이기도 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시행된 실험에 따르면 여러 줄로 기다리면 더 신속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 시간이 긴 ‘한 줄 서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서비스를 받는 불공정성을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최근 들어 한층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후반 사이 태어난 밀레니얼에게 공정성은 특히 중요한 가치다. 이들은 10대의 치열한 입시 경쟁, 20대의 무한한 취업 경쟁, 30대 이후론 회사에서 생존경쟁을 지속해야 하는 세대다. 무한 업적주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이들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정성을 담보한 ‘경쟁의 규칙’이다. 노력이 부족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나의 책임’이지만,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평가 기준이 불공정해 실패한 것은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성장과 발전을 위해 공공연히 희생되어 왔던 공정성 가치가 드디어 뿌리내리고 만개할 준비를 취하고 있다.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다름 아닌 직장이다. 기업에서는 연공서열 같은 위계적 관계가 능력 기반의 수평적 관계로 대체된다. 상사라고 해서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는 것은 곤란하다. 팀원의 성과를 팀장이 가로채는 일도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상급자가 부하 직원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인사평가방식 대신, 모든 팀원이 서로를 평가하는 ‘다면 평가제도’를 채택하는 기업도 최근 늘었다. 

조직문화도 변화 중이다. 기업들은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임원으로 이어진 위계적 조직 구조를 없애는 등 대대적으로 조직문화를 개편하고 있다. 직급 간 호칭 파괴 바람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호칭만으로 그 사람의 나이나 근속연수를 알 수 없도록 매니저, 프로, 플래너 등 새로운 호칭 체계를 접목한다. 영어이름을 사용하거나 심지어 사장을 포함한 전 직원이 서로 반말로 소통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회사 내 공간을 기획할 때도 공정성이 우선시된다. 과거 사무실 풍경은 창가 전망 좋은 곳에 임원 책상을 배치하고, 신입일수록 사람들이 드나드는 복도에 자리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책상 크기도 직위가 높을수록 컸다. 최근엔 직위와 상관없이 일찍 출근한 순서대로 누구나 공평하게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율좌석제’가 기존의 위계적 공간 구성을 대체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공정을 추구하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공정을 구(求)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흔들리는 이 땅의 공정성을 구(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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