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0.4도까지 올라간 지난 8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노원에너지제로주택’ 주민들은 에어컨을 거의 켜지 않았다. 실내 온도가 섭씨 26도로 일정하게 유지돼서다. 비결은 바로 땅속의 섭씨 15도로 일정한 ‘지열’을 활용한 데 있다. 건축 당시 지하주차장 하부에 160m 깊이로 뚫어 놓은 48개의 천공(구멍)에 냉방용 용수를 흘려 보내 냉각시킨 뒤 펌프를 이용해 끌어 올린다. 이 냉방용 용수를 ‘중앙 열회수형 환기장치’에 공급하면 여기서 공기도 15~17도로 냉각돼 각 세대로 보내지고, 실내 공기와 섞여 26도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펌프나 환기장치를 비롯한 이 같은 일련의 ‘지열시스템’은 태양광발전으로 단지에서 자체 생산된 전기로 가동된다. 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는 노원환경재단 관계자는 “세대나 개인에 따라 체감하는 더위가 달라 개별적으로 에어컨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냉방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기후ㆍ환경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서울판 그린 뉴딜’ 정책을 지난 8일 발표하면서 온실가스 배출 주범으로 ‘건물’을 꼽았다. 건물이 온실가스 발생량의 68%를 차지해 획기적인 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해서다.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이 어려운 ‘과제’를 노원에너지제로주택은 하나씩 풀어나가며 미래형 에너지자립 건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3년 정부의 ‘제로에너지주택단지 모델개발 및 실증단지 구축 R&D 사업’에 선정돼 서울시와 노원구가 4년여간 준비해 준공한 노원에너지제로주택(행복주택 121세대ㆍ39~59㎡)은 5대(난방ㆍ냉방ㆍ급탕ㆍ환기ㆍ조명) 에너지 소비량과 생산량의 대차대조가 ‘0’이 되는 공동주택을 구현하도록 차별화해 지어졌다.
태양광전지판이 지붕뿐만 아니라 햇빛의 동선을 따라 건물 일체형으로 동쪽과 남쪽, 서쪽 벽면에도 설치돼, 연간 407MWh의 전력량을 생산한다.
각종 장치를 이용해 단열 기능도 극대화했다. 단열재가 콘크리트 벽체 안쪽에 있는 기존 주택과 달리 에너지제로주택은 단열재가 벽체 바깥쪽에 있다. 콘크리트가 외기(外氣)에 노출되지 않도록 외부 단열재가 감싸 콘크리트 벽이 축열체의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냉난방이 오래 유지된다.
창호도 3중 유리다. 3중 유리 사이 공간에는 비활성기체로 움직임이 느린 아르곤가스를 넣어 대류에 의한 열전달을 최소화했다. 출입문도 내부에 단열재를 이중으로 넣고, 고무패킹과 매립형 힌지를 이용해 틈새 바람을 막는 ‘단열문’으로 했다.
이렇게 단열에 신경 쓴 이유는 우리나라 노후 공공건축물의 실내 열손실이 공간을 둘러싼 외피의 틈새(57.6%), 창호(27.6%), 외벽(9.1%) 등에서 대부분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틈새를 막기만 해도 난방에너지 요구량의 최대 50~60% 가량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덕분에 2018년 1월부터 주민들이 살기 시작한 노원에너지제로주택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2018년부터 노원에너지제로주택 실증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가 지난 2년여를 분석한 결과 누적 발전량(97만6,104kWh)이 소비량(77만130kWh) 보다 26.7% 많았다.
최근 1년(지난해 5월~올해 4월)간 태양광 발전을 통해 감축한 이산화탄소량도 183tCO₂ (이산화탄소톤)이나 됐다. 배출량(203tCO₂)을 상쇄한 순배출량은 20tCO₂에 불과했다. 이는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일반 아파트 배출량(2016년 기준 183tCO₂)의 10분의 1수준이다.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각 세대가 월 평균 지불한 에너지비용은 4만1,737원이었다. 혹한ㆍ혹서기 때 추가 냉난방을 위한 가스보일러ㆍ에어컨 사용, 세대별 가전제품과 엘리베이터 등 단지 공동사용 전력량이 반영된 것이다. 그래도 규모가 비슷한 관내 다른 임대아파트에 비해 47% 수준이다.
이응신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 교수는 “중국,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등 세계 여러 국가 정부 인사들이 노원에너지제로주택을 방문한다"며 "화석에너지 사용 최소화와 온실가스 감축에 탁월한 효과가 입증되고 있는 에너지제로주택이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