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한국 정부가 북한과 남북협력 목표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한국 정부를 완전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간 교착 상태를 풀 파격적인 대북 카드를 내놓은 건 아니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우리 정부가 중재자로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일단 다행스럽다.
북한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위기가 고조됐던 한반도 정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 결정으로 최악은 피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성사된 미국 국무부 2인자의 방한이 비핵화 협상 재개의 단초를 마련할 판문점 북미 간 접촉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 “북한과 대화 재개 시 균형 잡힌 합의를 이루기 위해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비건 부장관의 언급도 기대를 갖게 하지만 아직은 원론적 입장에 가깝다. 북한이 비건 방한을 앞두고 “우리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미리 어깃장을 놓았던 만큼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발언 수위다. 비건 부장관도 이날 “우리는 북한과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번 방한은 동맹을 만나기 위해서”라며 대화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비쳤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에 진척이 없어도 북한과 대화의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우리 측 입장에 미국이 공감한 것은 나름대로 소득이다. 이날 비건 부장관이 한미 워킹그룹 역할 조정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남북협력 지지’ 발언을 함으로써 보수야당이 우려하는 한미 공조 약화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금강산 개인관광, 철도 연결, 인도적 교류협력 사업은 이미 미국과도 협의를 많이 해온 분야인 만큼 지금부터라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마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에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친 것도 원론적 얘기이긴 하지만 꽉 막힌 한반도 정세에선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미 간 대화를 견인하는 중재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부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창의적 해법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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