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ㆍ전문가, 유행패턴 차이 등 확신 못해
빠른 감염은 결국 신종 코로나와 '장기전' 불러
기민하게 방역전략 세워야하는 당국에 새 난제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호남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GH유형이 기존 유행 바이러스들과 달리 매우 강한 전파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당국과 방역 전문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주로 해외연구결과에 의존해 GH유형의 감염 속도가 빠르다는 정도만 파악할 뿐, 앞선 유행과 패턴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방역속도가 신종 코로나의 전파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확대되는 GH유형 집단감염의 실체 파악이 늦어질 경우 여름 대유행의 현실화가 크게 우려된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부본부장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과 유럽에서 유입된 GH유형의 전파력을 연구한 논문과 관련해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대한 분석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의 전파속도까지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면서도 "(전파속도가 기존 바이러스 유형 그룹보다 빠를)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에서 바이러스의 전파력은 바이러스 자체 특성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환경요인이나 인구밀도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권 부본부장은 그러나 “현재까지는 전파 속도 외에 다른 차이점에 대한 언급이 없어 방역지침에 변화가 없다”며 “매일 전 세계 유수한 과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 신종 코로나에 대해 분석하고 있고 새롭게 등장하는 근거들이 언제, 어느 때에 새로운 예방지침이나 관리대책을 바꾸게 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감염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방역당국 입장에서 정체 파악이 힘든 GH유형의 등장이 풀기 힘든 숙제라는 얘기이다.
앞서 베테 코버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 이론생물 및 생물물리연구소 연구원팀과 영국 셰필드대 의대 연구팀은 셰필드 의대병원에서 999명의 환자로부터 신종 코로나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 게놈(유전자 지도)과 상기도에서 채취한 검체를 연구해 GH유형이 속해 있는 G그룹에서 체내 바이러스 양이 더 많음을 확인했다. 바이러스 양이 많다는 것은 전파력이 높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만 이 유형의 환자가 특별히 중증증상을 보이지는 않아 치명률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유전자와 아미노산(단백질의 기본 구성 단위) 종류에 따라 S, V, G 등 3개 그룹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2월 대구ㆍ경북지역에서 S, V 유형이 유행했으나 지금은 3~4월 유럽ㆍ미국 등에서 들어온 GH유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대본이 확진자에서 검출한 바이러스 526건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S그룹은 중국 우한시에서 입국한 교민, 초기 해외발 입국자, 서울 구로 콜센터 사례 등에서 확인됐으며 총 33건에 달했다. 앞서 2~3월에 대구지역 신천지예수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바이러스는 V그룹으로, 127건에서 확인됐다. 반면 GH유형은 333건에 달했다. 지난 5월 서울 이태원 클럽을 비롯해 쿠팡 물류센터, 방문판매업체 리치웨이, 경기 지역 교인모임 등에서 집단감염이 GH유형에서 비롯됐다.
국내 전문가들은 GH유형에 대한 국내 연구가 아직 결실을 보이지 않고 있어 당국과 마찬가지로 손쉽게 ‘정체’에 대해 단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섣부른 판단이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방역전략을 이끌 수 있어서다. 다만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대개 치명률을 낮추고 전파력을 강화하는 식으로 진화하며, GH유형 또한 이러한 패턴을 밟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와의 장기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 바이러스는 치명율을 높이는 데 급급한 나머지 개체 번식을 염두에 놓은 전략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감염체가 사라지면서 단기간에 종식됐다"며 "반대로 신종 코로나는 개체를 지속적으로 번식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같은 형태로 계속 진화한다면 깜깜이 감염 사례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GH유형의 또 다른 위험요소이다. 따라서 당국은 GH유형 유행에 따라 방역전략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 교수는 “백신이 하루 빨리 개발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건당국도 보유한 자원을 아껴야 하는 만큼 때를 봐서 추적조사 중단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태석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도 이날 “방역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함”이라며 “장기화에 대응해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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