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취업준비생, 인턴도 별따기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특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를 맞이 한 취업준비생, 대학신입생, 고3수험생 들은 몸과 마음의 고통이 누구보다도 큽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 있을 수는 없죠. 불청객 코로나19에 맞서 자신의 미래를 힘겹게 그려 나가는 모습을 들여다 봤습니다.
외환위기 한 복판이던 1998년. 한 대형 금융회사에 다니던 이봉수(가명ㆍ당시 37세)씨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한파에 옷을 벗어야 했다. 은퇴까지 '뱅커'로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거라 믿었던 그의 삶의 방향은 180도 어그러졌다. 지금까지 보험설계사로, 학원강사로 전전해온 이씨는 "외환위기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며 "반전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만회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깊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위기는 세대 성별 등을 가리지 않고 강타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위기를 맞이하는 이들은 그 타격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혹독한 외환위기 속에서 취업난 및 실직난과 싸워야 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세대가 있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 속에서 버텨내야 했던 금융위기 세대도 있었다. 중요한 시기에 방향을 튼 인생 항로는 되돌리기 쉽지 않다. 이씨처럼 그들 일부는 지금껏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또 다른 피해 세대를 만들고 있다. 이들이 감내해야 할 피해는 앞선 세대보다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등하는 속도가 빨랐던 앞선 위기들과 달리 코로나19는 극복의 기약이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코로나19 전후 환경의 단절은 이들이 딛고 설 발판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취업준비생, 대학신입생, 그리고 고3 수험생 등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힘겹게 자신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는 '코로나 세대'의 모습을 3회에 걸쳐 들여다 봤다.
뚝 끊긴 공채... "우리는 불안하고 우울하다“
취업준비생 손모(27)씨는 요즘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는 그는 “떨어지는 낭패감보다 코로나19 이후엔 지원서를 넣을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마냥 쉴 수도 없어 아르바이트 자리도 찾아보지만 그조차도 쉽지는 않다. 손씨는 “수입이 없는 빈털털이 백수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겁이 난다”며 “자영업을 하시는 어머니도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든 상황이라 손을 벌리기 죄송스럽다”고 했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 중인 박모(26)씨 역시 요즘 막연한 불안감에 밤잠을 설친다. 지난해 12월 이후 공채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올해 지원한 1건의 공채에서 쓴맛을 본 뒤 최근 한 언론사에서 단기 인턴을 시작했다. 박씨는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다고 생각하니 구직 활동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래도 인턴 자리라도 차지한 이들은 성공적이다. 취준생들에게 인턴 자리는 '금턴'이 된지 오래다. 마케팅 직군을 지망하는 최모(26)씨는 “공백기를 만들 수 없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단순 사무보조 직무에도 고스펙자들이 몰리는 상황”이라며 “석사 선배들까지 취업난으로 인턴에 지원하며 나 같은 학생은 설 곳이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라고 씁쓸해 했다.
팍팍한 취업시장 분위기는 수치로 확인된다. 잡코리아가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715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채용시장 전망과 채용 계획’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8%만 ‘신입 및 경력직 직원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작년 하반기 69.9%가 직원을 채용한 것에 비하면 20%포인트 가량 하락한 수치다.
올해 밀리면 내년엔 더 밀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올해 취업을 포기하겠다는 이들도 많다. 내년 취업을 목표로 상황이 더 정리될 때까지 인턴 등 다른 활동을 하면서 기다려보겠다는 것이다. 김모(22)씨는 “내년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희망이 있지 않겠나 기대하고 있다”라며 “올해는 토익 준비나 스터디그룹 모임을 하면서 보낼까 싶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의 기대와 달리 올해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하면 내년엔 더 많은 경쟁자와 싸워야 한다. 올해 취업에서 탈락한 이들에 더해 내년에 대거 쏟아지는 졸업생까지 경쟁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더구나 기업들이 통상 신규 졸업생을 더 선호하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취준생들은 내년 졸업생에 비해 경쟁력에서 밀릴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을 아는 취준생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모든 채용 공고마다 일단 지원서를 넣고 본다. 일종의 '묻지마 지원자'들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올해 채용을 진행한 기업 531개사를 대상으로 ‘묻지마 지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82.3%가 묻지마 지원이 있었다고 답을 했다. 취업준비생 위모(26)씨는 “공채가 줄어드니 어느 기업이든 공고가 나오면 일단 지원을 하게 된다”고 했다.
취업문은 좁은데 준비할 건 더 많다
설령 공채가 있다고 해도, 준비 과정이 녹록지 않다. 코로나19로 화상면접 등 언택트(비대면) 방식이 새롭게 적용됐다. 일반적인 구직 준비에 더해 화상 면접, 온라인 시험 등에 추가로 대비를 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5월 말 최초로 온라인을 통해 직무적성검사(GSAT)를 실시한 이후 대림산업 SK텔레콤 CJ 등 다수의 기업이 대면 면접을 화상으로 대체했다. 취준생 사이에는 화상 면접 팁까지 공유된다. ‘스탠드 조명을 활용해 얼굴을 밝게 비춰라’ ‘카메라를 보고 말하라’ ‘화면에 노출되는 배경을 체크해라’ 등. 코로나가 아니라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지만 막상 이에 직면한 취준생들은 우려가 상당하다. 면접은 첫 인상이 중요한데 화상으로 나누는 짧은 대화에서 본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한 기업에서 화상 면접을 치렀다는 위씨는 “접속 과정이 어렵고 면접 중간 마이크가 꺼지는 등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집중도가 흐트러졌다”며 “인사담당자도 카메라를 보는 걸 낯설어해서 평가가 제대로 될지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사정이 크게 좋지는 않다. 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이예지(26)씨는 "1차 지원자가 작년에는 6,000명 후반대였는데 올해는 8,000명 가량 지원을 했다"며 "합격률은 떨어지는데 경쟁률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에 자격증 준비 등을 통해서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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