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발탁된 박지원-문대통령 '오월동주' 인연
새정치민주연합 때 '비노' '친노' 갈려 싸우다 분당
국민의당 합류 4선 의원 지내 "초대 평양 대사가 꿈"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에서 안철수의 남자, 마침내 문재인의 '국정원장' 후보자로.
'정치 9단' 박지원(78) 국정원장 후보자가 또 한 번 옷을 갈아 입었다. 4월 21대 총선에서 지역구(전남 목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경쟁하다 낙선하고 배지를 뗐지만 "박지원은 영원한 현역"이라고 외치던 그는 3일 서훈 국정원장 후임으로 낙점되면서 80일 만에 화려하게 정치권에 돌아오게 됐다.
전남 진도 출신인 박 후보자는 30대 초반 미국에서 가발사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1970년대에 미국 망명 중이던 DJ를 만나 정계에 입문, 14대 국회에 입성한 그는 뛰어난 언변으로 '명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1997년 대선에서 DJ 당선에 공을 세워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이후로는 청와대 비서실장, 공보수석, 정책기획수석, 정책특보, 문화관광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쳐 명실상부한 '국민의 정부 2인자'로 자리 잡았다.
승승장구하던 박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관련 불법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2007년 2월 특별사면 이전까지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듬해 무소속으로 출마, 전남 목포에서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복당해 19대ㆍ20대 국회에서 내리 배지를 달며 '호남의 맹주'로 자리잡았지만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2ㆍ8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치열한 경쟁 끝에 2위로 석패했다. 이듬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 안철수ㆍ천정배 공동 대표가 있던 국민의당에 합류했고, 민주평화당, 대안정치연대, 민생당을 거친 뒤 4ㆍ15 총선에서 낙선으로 야인 생활에 들어갔다.
'당권 경쟁'으로 文과 등돌리기도
박 후보자의 이날 국정원장 발탁이 '깜짝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은 같은 진보진영에 몸 담으면서도 오월동주(吳越同舟)에 가까웠던 문 대통령과 관계 때문이다.
박 후보자와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2ㆍ8 전당대회에서 각각 비노(비노무현) 친노(친노무현)의 대표주자로 나섰다. 당시 두 후보는 '무능' '비열' '저질' 등 막말에 가까운 단어를 동원해 서로를 물어 뜯었고, 이 갈등은 결국 분당의 씨앗이 됐다는 평가다. 당시 같이 후보로 나왔던 이인영 의원이 "그 두 분의 진흙탕 싸움은 국민도 보기 싫어하고 저도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일갈했을 정도다. 당시 뼈있는 한 마디를 던졌던 이 의원은 이날 함께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되기도 했다.
결국 전당대회에서 2위로 석패한 박 후보자는 다음해 1월 민주당을 탈당, 3월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국민의당 합류 이후 전남 목포에서 당선, 4선 반열에 오른 그는 국민의당 원내대표로 합의추대되면서 3당 구도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을 이끌었다. 2017년엔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같은해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文정부 출범 후엔 '든든한 우군' 변모
분당 이후 대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손을 잡고 문 대통령을 향해 끊임없이 '견제구'를 던지던 박 후보자는 막상 정부가 출범하자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공식 석상에서 발언 등으로 정부 정책을 지원하는 든든한 우군이 됐다. 특히 남북관계ㆍ북미관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안보 정책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에는 야당 의원으로서는 유일하게 문 대통령을 특별 수행하기도 했다. 21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문 대통령의 성공을 통해서 진보 정권이 재창출되는데 박지원의 역할이 있다”고 소회를 밝혔을 정도다.
6ㆍ15 남북정상회담 실무 주역으로 과거 대북특사로 활동, 평소 '초대 평양대사'가 꿈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던 박 후보자는 최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남북 갈등 양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대북 정책에 힘을 실었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 안보 분야 원로들과 오찬에도 자리해 자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이번 국정원장 후보자 내정에 대북전문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낙선 이후로도 신문과 방송, 인터넷 매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정치인이었던 박 후보자는 이날 내정 이후 "정치의 정(政) 자도 올리지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며 "SNS 활동과 전화 소통도 중단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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