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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과 시루

입력
2020.07.03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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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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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역대 최고의 찜통더위가 될 것이라 한다. ‘찜통더위’라는 표현이 우리에겐 너무 낯익다 보니 마치 수백 년 이상 써온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리 오래된 표현은 아니다. 원래 있었던 ‘찌는 듯한 더위’라는 표현이 ‘찜통더위’로 표현되려면 우선 찜통이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져야 했다.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찜통’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이고, ‘찜통더위’는 1980년대부터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전통적인 찜기는 ‘찜통’이 아니라 ‘시루’였다. 시루는 바닥에 구멍이 뚫린 질그릇이다. 그 구멍으로 들어온 수증기로 식재료를 찌는데, 우리 민족은 무쇠솥이 보급되기 전까지 이 시루에 밥을 쪄서 먹었다. 그 후에라도 대량 급식을 하려면 밥을 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군 생활을 한 사람들은 군대에서 먹는 밥, 나아가 연륜을 이르는 ‘짬밥’의 어원을 ‘찐 밥’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찐 밥’ 내와 땀내가 어우러진 특유의 냄새는 중장년층 군필자들의 중요한 후각적 기억으로 남아 그들의 추억담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시루가 오로지 뜨거운 열기만 받는 신세는 아니다. 시루에 베를 깔고 콩을 얹어서 시원한 곳에 두고 찬물을 듬뿍 주면 ‘콩나물시루’가 된다. 시루가 콩나물 덕분에 땀내의 이미지에서 벗어났으면 좋으련만, 시원시원하게 너무 잘 자라도 문제다. 잘 자란 콩나물이 시루가 미어터질 듯 꽉 차 있는 모습이 마치 좁은 곳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몰려있는 상황과 닮았다고 해서 ‘콩나물시루’ 역시 땀내로 숨 막히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올여름은 마스크 때문에 더 찜통 같겠지만, 콩나물시루 같은 곳은 되도록 피하면서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도 싶다.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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