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레지스트ㆍ폴리이미드 日 수입 되레↑
日 기업 매출 감소ㆍ日 맥주 등 불매 ‘유탄’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ㆍ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 다음달로 1년(1일 규제 발표, 4일 시행)을 맞는다. 사태 초반엔 국내 반도체 생산라인이 수개월 내 멈출 거란 우려까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는 민관의 합심 대응으로 우리나라 소재ㆍ부품ㆍ장비(소부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면 일본은 현지 규제품목 생산업체의 매출 감소는 물론이고 한국에 진출한 유통업체도 '반일 정서'의 악재를 겪으며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다만 첨단 소재 및 장비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양국 경제 갈등이 정치적 이해 충돌로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이라 제2의 수출규제 파동이 재연될 수 있는 경계심도 높다.
한국엔 약(藥), 일본엔 독(毒)
일본이 지난해 7월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꾼 이후 우리나라 기업 및 산업당국은 이들 품목의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에 발 벗고 나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의 반도체 소재 생산 기업인 SK머티리얼즈는 최근 초고순도(순도 99.999%) 불화수소 가스 양산에 성공했다. 불화수소 가스는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공정에 사용되는데 기술 난도가 높아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왔다. SK머티리얼즈는 2023년까지 불화수소 가스의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앞서 불화수소 액체는 수출규제 직후였던 지난 해 10월 솔브레인이과 램테크놀로지 등이 이미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일본산 불화수소 액체를 국산 제품으로 100% 대체한 상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액은 403만달러(48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843만달러(340억원)보다 85.8% 급감했다. 같은 기간 전체 수입 물량 중 일본산 비중도 43.9%에서 12.3%로 대폭 낮아졌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100대 핵심 품목에 대한 국산화 작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수출규제가 갑작스럽게 시작되면서 소부장 국산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동력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돌아봤다.
핵심 소재 일본 의존도 여전
일본 수출규제에서 비롯된 부정적 영향은 다행히 예상보다 적었지만 소부장 국산화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이번 3대 규제 품목 중에서도 불화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소재에 대한 일본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반도체 공정에서 빛을 인식하는 감광재로 삼성전자의 차세대 EUV 반도체 공정에 투입되는 소재인 포토레지스트는 올 1~5월 일본 수입액이 1억5,081만달러(1,808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3.8% 늘었다. 폴더블 스마트폰이나 롤러블 TV 등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제작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같은 기간 일본 수입액이 1,303만달러(156억원)로 7.4% 증가했다.
물론 이들 소재도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에 성과를 거뒀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올해 1~5월 벨기에 수입액(872만달러)을 전년 동기(48만달러) 대비 18배 늘렸고, 미국 듀폰이 충남 천안에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폴리이미드도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경북 구미에 생산 설비를 갖춰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갔고 SKC도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긴 하다. 그러나 두 소재의 일본 수입 비중은 여전히 90% 안팎에 달할 정도로 높은 게 현실이다.
품목별로 국산화율에 편차가 큰 만큼 정부가 더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일본과 한국의 대표 반도체 소재기업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3.8%와 2.6%로 큰 차이가 없지만 기업별 평균 연구개발비는 일본이 1,534억원인데 한국은 130억원에 불과하다”며 “중소업체 간 인수합병(M&A)을 독려하거나 잠재력 있는 업체 지원 등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불매운동 유탄 맞은 일본 기업들
반면 수출규제 후 한국이라는 대형 수요처를 잃은 일본 내 불화수소 생산업체들은 역풍을 맞았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세계 불화수소 1위 업체인 스텔라케미파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각각 12%, 32%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스텔라케미파 주가는 지난 26일 2,411엔으로 수출규제 발표 직전인 지난해 6월 28일 대비 19.6% 하락했다. 닛케이는 “탈(脫)일본으로 일본 소재부품 회사들의 타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도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유탄을 맞았다. 맥주가 대표적 품목이다. 관세청 집계 결과 올 4월 일본산 맥주 수입액은 63만달러(7억5,500만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7.8% 줄었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편의점 수입맥주 판매를 좌우하던 일본 맥주의 매출이 급락한 이후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지난해부터 4캔 1만원 행사에도 일본 맥주는 제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골프채(-48.8%)와 화장품(-43.3%), 볼펜(-51.1%), 낚시용품(-37.8%) 수입액도 반토막이 났다.
일본 의류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는 2018년 회계연도(2018년 9월~2019년 8월) 영업이익이 1,994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5% 가까이 줄었다고 밝혔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 닛산은 16년 만에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고, 카메라 브랜드 올림푸스도 한국에서 20년 만에 카메라 사업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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