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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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입력
2020.07.16 18:00
수정
2020.07.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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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박 시장 죽음에서 드러난 진보진영의 민낯
사건처리과정은 우리사회의 한 지표될 것
정치적 상징성 걷어내고 사실로만 다뤄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에서 조문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마친 뒤 식장을 나서고 있다. 이 대표는 취재진의 "고인에 대한 의혹이 있는데 당차원 대응할 것인가"는 질문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합니까"며 질타했다. 연합뉴스


‘사실’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 여비서가 그를 고소했고 어떤 경위로든 당사자에게 즉각 전해졌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사라져 몇 시간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피소 전까지의 일상적 태도로 보아 추정할 만한 다른 동기는 없다. 그가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를 했고, 수사와 처벌, 도덕적 비난과 평판의 추락―그에겐 죽음보다 더 못 견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설명하는 데 이 이상의 구구한 사실은 필요치 않다.

그는 기득권의 철옹성에 맞서 불가능할 것 같은 승리를 거둬 가며 성장한 인물이다. 원칙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스타일로 보아 억울했으면 끝까지 진위다툼을 벌였을 것이고, 끝내 고소인의 주장을 뒤집어 또 하나의 빛나는 경력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비열한 음모를 이겨낸, 더 없이 단단한 정치인 이미지는 대선가도에도 엄청난 자산이 됐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극단의 방식으로 허망하게 방어권을 포기해 버렸다. 유서에는 주변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만 짧게 적었다. 억울함도, 미안함의 표현도 없었다. 창졸간에 닥친 상황에 대한 회한과 절망감만이 가득해 보였다. ‘박원순’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걷어내면 다른 시각이 틈입할 여지없는 단순사건이다.

그러나 사건의 파장은 크고도 길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해석과 견해가 사실을 덮고 비틀 것이다. 다 아는 내용을 굳이 반복한 것도 사실을 못 박아두기 위함이다. 조짐은 이미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처음부터 사건의 성격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서울특별시장(葬)에 시민분향소 설치를 밀어붙인 것부터가 시작이다.

정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선구적 시민운동가로서, 따뜻한 정치인으로서 박원순의 성취와 기여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평가를 받아야 할 다른 영역이다. 다만 이건 엄연한 범죄사건을 다루는 일이다. 정황이 분명한 혐의자에 대한 극진한 공적 예우는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상식을 가진 시민을 경시하고 정상적인 가치 체계를 뒤집는 것이다.

국민 인식과 사회가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집권여당의 주요 인사들이 앞다퉈 고인의 공과 인품을 추모하며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크게 잘못된 일이었다, 보편적 인권, 사회적 약자 배려 등의 진보가치를 추구한다는 이들이다. 젠더 감수성 중시의 시대흐름을 반영한다며 성범죄에 대한 국가 책임을 당 강령에까지 담은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피해호소인, 사자명예훼손, 무죄추정원칙 위배 따위의 요언(妖言)을 입에 올리고 사건을 묻는 취재기자에게 폭언을 뱉었다. 진보 이념으로 분식했을 뿐 전형적 패당의 모습과 다름 없다. 과거 ‘성(性)누리당’으로 조롱하던 보수정당의 행태와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뒤늦게 주워 담느라 허둥대나 민낯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가해자의 죽음으로 피해자만이 홀로 벌판에 내던져진 상황이 됐다. 상대조차 없어져 버린 그의 말은 일방 주장으로 매도될 가능성이 높고, 또 늘 그렇듯 틀림없이 그를 폄훼하는 온갖 악의적 소문과 추측들이 사실처럼 떠돌 것이다. 피해자는 이미 잔뜩 공포에 질려 절규하고 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를 이 끔찍한 벌판에서 데리고 나와 안전한 일상의 삶으로 복귀시키기까지는 이 사건은 끝나는 게 아니다. 이 사건의 처리 과정은 훗날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의미 지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여야 정치권 할 것 없이 이 사건에 관한한 박 시장의 정치적 상징성은 당분간 지우고 오직 사실만을 다루도록 놓아두는 것이 옳다. 사실이란 애당초 정치가 개입해선 안 되는 영역이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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