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항에 정박한 러시아 냉동 화물선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은 허술한 방역 체계의 일단을 보여준다. 콜센터와 택배 물류센터에 이어 집단감염이 높은 환경이었는데도 사실상 방치해 사태를 키운 꼴이다.
국립부산검역소와 부산항운노조에 따르면, 러시아 선박 선원 21명 중 확진 판정을 받은 이는 무려 16명이다. 나머지 5명도 추가 진단 검사에서 양성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역 노동자, 화물검수사, 수리공, 도선사, 수산품 품질관리원 등 러시아 선원들과 밀접 접촉한 국내 노동자도 23일 낮까지 90여명으로 집계됐다.
선박 내 집단감염의 원인은 선장으로 보인다. 일주일 전 발열 증세를 보여 러시아 현지에서 하선했고 이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부산검역소에 이 사실이 전달된 건 22일 오전이다. 선박은 이미 전날 오전 감천항에 정박해 국내 노동자 34명이 하역 작업을 하는 상황이었다.
이 선박에 올라 하역작업을 했던 항운노조원들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상당 시간 러시아 선원들과 밀접 접촉했다. 러시아 선원들 역시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턱 아래에 걸쳐 놓고 있었다고 한다.
작업 환경도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어창은 기온이 영하 20~50도여서 마스크를 쓸 수가 없고, 하역을 할 때도 무더위와 땀 때문에 마스크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밀접 접촉자를 포함해 격리 조치된 항운노조원만 160여명에 달하지만 관련 매뉴얼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대응 조치도 안내받지 못했다는 게 항운노조의 주장이다. 코로나19 사태가 5개월이 넘었는데도 사업장별 세부 방역수칙이나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면, 방역의 큰 구멍을 아무런 조치 없이 내버려 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항만 하역장은 콜센터나 물류센터와 마찬가지로 집단감염 발병 가능성이 높은 근무 여건이었다. 쿠팡 사태로 기존 방역체계가 파악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선제적으로 탐색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한 게 이달 초다. 정부는 이제라도 고위험 시설을 면밀히 파악하고 분류해 대응해야 한다. 일회적인 집단감염은 사고지만, 반복되면 방역당국이 자초한 인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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