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16명 확진에 접촉자 176명
검역관리지역 빠져 항만 방역 구멍
부산항 감천부두에 입항한 러시아 선박에서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16명이나 무더기로 확인된 가운데 방역당국의 안일한 대처로 접촉자가 176명이나 발생했다. 해당 선박은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발생한 러시아를 거쳐 왔지만 부산검역소는 서류로만 검역을 진행했다. 당국이 고열에 시달리는 선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입항을 허가한 이후, 국내 인력이 승선해 하역작업을 시작했고 접촉자가 쏟아진 것이다. 당국은 하역 이튿날 세관업무 등을 대행하는 해운대리점의 신고를 받고서야 승선검역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항만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렸다. 방역당국은 규정을 지켰지만 규정 자체가 낡아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23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현재의 항만 방역체계는 검역관리지역으로 지정된 중국, 이란, 이탈리아에서 온 선박만 검역관이 직접 승선해 검역하도록 돼 있다. 러시아 선박은 보건위생 안전과 관련한 서류만 검사해도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문제는 중국에 이어 이란과 이탈리아를 검역관리지역으로 지정한 시기가 지난 3월 11일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중국(8만778명) 이탈리아(1만149명) 이란(8,042명)은 신종 코로나 확진자 규모가 세계에서 손에 꼽는 수준이었고 러시아는 확진자가 500명 이상 발생한 국가군에 들지도 않았다. 현재 러시아(59만명)보다 확진자가 많은 나라는 미국(230만명)과 브라질(110만명)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국적 냉동어선 ‘아이스 스트림(Ice stream)'이 지난 19일 오전 부산항에 들어왔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출발한 아이스 스트림은 21일 오전 8시 감천부두로 입항하면서 전자검역을 받았으나 유증상자 3명이 탑승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화물선 선원의 하선은 금지돼 있지만 도선사를 비롯해 국내 인력이 승선을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접촉자가 발생했다. 이튿날(22일) 해운대리점이 부산검역소로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이뤄진 선원 교대에서 하선한 선장이 확진판정을 받았다”라고 신고하면서 그제서야 승선검역이 이뤄졌다.
이후 시행된 검사에서 아이스 스트림 선원 21명 가운데 16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아이스 스트림과 나란히 정박해 사다리 등을 이용해 교류한 동일 선사 소속 '아이스 크리스탈(Ice crystal)'의 선원 21명 가운데서도 1명이 추가로 감염됐다. 이들은 23일 오후 부산의료원으로 입원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접촉자는 미확진 선원(5명)을 포함해 통역ㆍ해운대리점ㆍ수리업체 관련자(26명) 하역작업자(61명) 등 176명이다. 이들 중 우리 국민은 150명으로 자택 등에 격리됐다.
부산항만공사와 항운노조 등에 따르면 부산항에 입항하는 선박은 하루 평균 50척 이상이다. 러시아 선박은 대부분 냉동 수산물을 싣고 주로 감천부두로 하루 14척 정도가 출입한다. 항만 관계자는 "신항과 북항에 하루 40여척이 입항하는 컨테이너선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며 "선원들이 배에서 하선하지 않는다고 해도 급유, 선용품공급, 청소, 검수 등 많은 업종의 노동자들이 선원들과 접촉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권준욱 중대본 부본부장은 “러시아 환자가 최근 유럽 전체 대륙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환자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상황”이라면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러시아도 승선검역 대상에 포함해 관리하도록 적극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권 부본부장은 “선박 하선자 가운데 감염자가 나오면 해당 국가에서 최종 목적지에 해당하는 우리나라로 통보해주는 것이 관례인데 아직 연락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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