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백자 동화매국문 병’ 지정 해제… ‘백양사 불상’ 등 2건은 보물 지정
알고 보니 흔한 중국 도자기였다. 만든 나라와 가치를 놓고 논란을 빚어 온 매화 무늬 백자 ‘백자 동화매국문(銅畵梅菊文) 병’이 지정된 지 46년 만에 국보 지위를 잃었다. 17세기 불상 조각의 대가인 승려 현진이 임진왜란 직후 만든 대형 불상은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그간 국보로서의 위상과 가치 재검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백자 동화매국문 병’의 국보 지정을 해제했다고 23일 밝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이 백자는 일본인 골동품상 아마쓰 모타로(天池茂太郞)에게 300엔을 주고 구매했다는 유물이다. 높이가 21.4㎝, 입 지름은 4.9㎝다. 진사(辰砂ㆍ붉은색 안료)를 사용한 조선 초기의 드문 작품으로, 화려한 문양과 안정된 형태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으며 1974년 7월 국보로 지정됐다.
하지만 2018년 학계에서 중국 원나라 작품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고, 이에 문화재청은 중국과 한국 도자사 전문가로 조사단을 꾸려 연구에 착수했다. 4월 문화재위원회가 심도 깊은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은 ‘해제 타당’이었다.
문화재청은 △출토지나 유래에서 우리나라와의 연관성이 불분명하고 △같은 종류 도자기가 중국에 상당수 존재해 희소성이 떨어지며 △작품 수준도 우리나라 도자사에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보 지정 해제는 세 번째다. 거북선에 장착된 화기로 알려졌지만 1996년 가짜로 판명됐던 ‘귀함별황자총통’은 국보 제274호였고 국보 제278호 ‘이형 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은 2010년 한 단계 아래인 보물로 강등됐다. 국가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되면 해당 지정 번호는 영구 결번 처리된다.
반면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 제2066호로 지정된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후기 조각승 현진이 만든 현존 작품 가운데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르다. 높이가 208㎝에 달하는 대형 불상으로, 17세기 불교 조각사를 대표하는 승려 현진이 휴일ㆍ문습과 함께 만들었다. 선조 40년(1607년)에 완성됐다. 현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불상의 조성을 주도했고, 광해군비가 발원한 자수사ㆍ인수사의 11존 불상 제작을 지휘했다. 지금껏 1612년 제작된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불좌상’이 가장 이른 시기 작품으로 알려졌었다.
대좌(불상 받침대) 아래 묵서(墨書ㆍ먹으로 쓴 글)에 따르면 이 불상은 선대 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고 성불(成佛)을 기원하고자 만들었다. 임진왜란 등 전쟁이 끝난 뒤 진행된 불교 복구 과정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술사적으로 장대한 규모에 긴 허리, 원만한 얼굴과 당당한 어깨, 신체 굴곡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 주름, 안정된 자태 등에서 현진의 빼어난 조각 실력과 17세기 불교 조각의 새 경향이 확인된다는 평가다. 1741, 1755년에 작성된 중수 발원문으로 개금(改金ㆍ금칠을 다시 함)과 중수 내력, 참여 화승의 명단 및 역할을 알 수 있어 학술적 의미도 크다.
보물 제2067호가 된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추정 제작 시기가 15세기다. 남장사 내 부속 사찰인 관음선원에 봉안돼 있는데, 이 관음보살좌상 뒤에 보물 제923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이 놓여 있다.
이 불상은 발원문 등 기록이 부족해 정확한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귀족풍의 단정한 얼굴, 어깨와 배에 잡힌 옷 주름, 팔꿈치의 ‘?’ 형 주름, 무릎 앞의 부채꼴 주름 등이 15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세기 조선 전기 불상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고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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