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노동조합들이 "은행원의 점심시간 보장을 위해 아예 지점 문을 닫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A지점이 식사하는 동안, 인근 B지점이 고객을 맞으면 된다는 것이다. 은행원의 건강권과 노동기본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인데, 고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낮 시간에 영업점 셔터를 내리는 게 합리적인 해법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 산별 노조인 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최근 사용자측과 올해 임금ㆍ단체협상(임단협) 3차 교섭에서 ‘부ㆍ점별 중식시간 동시사용 요구안’을 주요 교섭 안건으로 내놨다. 현재의 점심시간 2,3교대 체제가 아니라, 지점별로 아예 1시간 동안 문을 닫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령 서울 종로 지역에 같은 은행 지점이 3개 있으면, A지점은 오전 11시~낮12시, B지점은 낮12시~오후 1시, C지점은 오후 1시~2시 등으로 식사 시간을 분산해 셔터를 내리고 점심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지점별 점심시간은 사전에 온라인 등으로 알려 고객이 다른 지점을 찾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게 노조의 복안이다.
은행권 노조의 점심시간 보장 요구는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도 금융노조는 금융사 직원들이 점심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며 전 금융기관이 점심시간 1시간을 동시에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휴게시간 1시간 보장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다만, 주로 점심시간에 고객이 몰리는 은행 지점 등의 특성상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측면이 부각돼 결국 당시 요구는 노사 합의안에서 빠졌다. 다만 각 은행은 자체적으로 점심시간 개별 행원들의 PC가 꺼지는 등의 방식으로 휴식을 보장하기로 했다.
올해 금융노조가 또 다시 '점심 보장'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이 같은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 관련 대출 업무가 몰리거나, 휴가ㆍ연수자 등이 생기는 날엔 여전히 점심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노조는 주장한다. 전산망 접속을 끊어도 PC가 필요없는 다른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일선 은행원들은 호소한다. 결국 점심시간에 일괄적으로 지점 문을 닫아야만 휴식시간이 보장된다는 게 노조의 논리다.
하지만 사용자 측은 이 같은 노조의 요구에 부정적이다. 지점 문을 아예 닫으면 점심시간을 쪼개 은행 업무를 보는 직장인의 불편이 커지고, 일부 지점에 고객이 몰리면서 오히려 업무 처리와 대기 시간이 길어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금융노조는 이에 대해 “식사 교대가 없어지면 점심시간에 모든 직원이 업무를 봐, 오히려 대기 시간도 감소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를 두고 대고객 서비스를 본업으로 삼는 은행원들이 고객을 볼모로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 지점을 찾았다 발길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대면 영업이 줄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지점은 고객을 만나는 최일선 창구”라며 “고객이 방문했을 때 문이 닫혀있다면 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노사 양측은 오는 24일 4차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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