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만 얘기하는게 아니다” 한국 분담금 협상에 불똥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주독미군 수를 2만5,000명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주둔 병력 감축을 지시했다는 최근 언론 보도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는 독일의 방위비 지출이 적다는 불만에 따른 것이어서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주한미군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독일을 방어하고 있지만 그들은 채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면서 “그 수를 2만5,000명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독일에는 미군 3만4,5000명이 상시 주둔하고 있으며, 순환 배치와 훈련 참가 등으로 5만2,00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독일에 5만2,000명이 있다”면서 “독일이 (더 많은 방위비를) 지불할 때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에 주독미군을 2만5,000명으로 줄일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공화당 하원의원 22명이 “미국의 안보를 해치고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시킬 것”이라며 관련 계획의 재고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민주당도 “동맹을 해치고 러시아에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없이 주독미군 감축을 오히려 자신의 입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 혜택설을 의식한 듯 “독일은 왜 에너지 비용으로 러시아에 수십억달러를 주느냐”고 반박했다. 러시아 유전에서 발트해를 지나 독일로 바로 연결되는 ‘노르드 스트림’ 파이프라인을 겨냥한 발언이다. 독일과 러시아가 이미 밀착돼 있는 것 아니냐고 비난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안팎의 반발을 무릅쓰고 주독미군 감축을 공론화한 것을 두고 ‘본보기’ 차원의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독일의 방위비 증액 약속 이행이 더딘데다 무역 문제까지 겹쳐 있기 때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는 2024년까지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독일의 방위비 지출은 GDP의 1.35%에 그쳤고 2031년 목표치도 2%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들도 미국을 이용하지만 가장 심한 곳이 독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우리 입장에서 민감한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에 대해서만 애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고 말한 점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여차하면 미군을 빼내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대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한국 일본 그리고 독일로부터 군대를 데려오기를 원한다’고 분명히 말했다”면서 명시적으로 한국을 거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든 건 보호무역ㆍ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백인 노동자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미군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울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한국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미 국방수권법상 의회의 동의 없이 주한미군을 2만8,5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고 한국의 방위비 지출 규모도 이미 GDP의 2%를 넘는 등 독일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겐 최근 북한의 대남 공세ㆍ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한미 갈등 양상이 불거지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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