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경고 사흘 만에 강행… 전날 文대통령 “남북 협력” 무위로
靑 NSC 강한 유감… 北 “비무장화 지대 재무장” 남북 파국 수순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와 협력을 호소한 다음 날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연락사무소는 2018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4ㆍ27 판문점선언의 산물이자 문재인 정부 남북관계 최대 성과 중 하나다. 북한이 남북관계 파국 수순을 밟아가면서 한반도가 격랑에 휩쓸리게 됐다.
통일부는 16일 “북한이 이날 오후 2시 49분 개성 연락사무소 청사 건물을 완전히 폭파했다”고 밝혔다. 북한도 이날 오후 5시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사무소 폭파 사실을 공식 보도했다. 최근 대남 압박 선봉에 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13일 담화에서 “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지 3일 만에 북측이 실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연락사무소는 ‘남북 간 소통을 원활히 하자’는 판문점선언 합의에 따라 2018년 9월 개성공단 내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북측의 일방적 결정과 행동으로 1년 9개월 만에 사라지게 됐다. 이날 폭파 당시 남측에서도 폭음과 연기가 관측됐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1월 말 통일부 인력이 철수한 상태라 남측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북한은 6월 들어 김 제1부부장 지휘 아래 대남 도발 수위를 높여왔다. 김 제1부부장이 4일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연락사무소 폐쇄’를 언급한 지 5일 만인 9일 남북 간 연락채널을 모두 끊었다. 이후 김 제1부부장이 13일 ‘연락사무소 해체’를 추가 언급하자 즉각 이행했다.
연락사무소 폭파 강행에 정부는 다급해졌다. 특히 문 대통령이 15일 ‘남북 독자적 협력 강화로 남북관계를 풀자’고 제안했음에도 북한이 아랑곳 않고 사무소를 폭파하자 정부는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청와대는 오후 5시 5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 후 청와대는 “사무소 파괴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또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는 그에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서호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장(통일부 차관)도 “남북관계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있어서는 안 될 행위”라며 항의했다. 군은 개성 관련 대북감시ㆍ대비태세를 강화했고 최전방부대 지휘관 정위치를 지시했다.
북한의 대남 압박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폭파에 앞서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남측의 합동참모본부)도 △비무장화 지대 군대 다시 진출, 전선 요새화 △대규모 대남전단 살포 같은 ‘대남 행동 계획’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비무장지대(DMZ)에서 철수했던 감시초소(GP)를 복구하거나 판문점 경계병들을 재무장시킬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역에 군 병력과 장비를 다시 배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북한 주민이나 군인들이 대남 삐라를 살포하고, 국지 무력도발을 강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018년 이후) 남북이 어렵게 합의한 ‘일상적 평화’가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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