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그곳에서 고개숙인 대통령... 경찰청장도 동행 ‘국가 폭력’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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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그곳에서 고개숙인 대통령... 경찰청장도 동행 ‘국가 폭력’ 사과

입력
2020.06.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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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10민주항쟁 33주년 맞아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 방문

김정숙 여사, 박종철 열사 사진에 꽃다발 올리고 눈시울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ㆍ10 민주항쟁 기념식을 마친 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고 숨진 509호 조사실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제33주년 6ㆍ10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10일 고(故)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고 숨진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를 찾았다. 민주주의 억압의 상징인 ‘물고문 욕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을 현직 대통령이 방문한 건 처음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박 열사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 장미와 카네이션, 안개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놓았다. 무명 손수건으로 감싼 꽃다발은 김 여사가 만들었다. 청와대는 “평범한 국민들에 바치는 헌사의 의미가 꽃다발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대공분실 509호에서 고초를 겪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은 문 대통령 부부에게 고문의 고통과 당시 심정을 풀어놨다. 한 손으로 욕조를 짚은 채 귀 기울이던 문 대통령은 “(욕조 자체로) 공포감이 딱 오는 것이죠. 물고문이 예정돼있단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당시 군사정권이)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여러 가지를 무너뜨리는 것이죠” 같은 말로 슬픔을 표했다. 굳은 얼굴로 박 열사 사진 앞에 놓인 꽃다발을 응시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지선 스님의 말을 들으며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문 대통령의 509호 방문엔 박종철 열사 형인 박종부씨가 함께했고, 민갑룡 경찰청장,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수행했다. 문 대통령은 “(이곳을) 경찰에서 민주인권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내놓은 것도 큰 용기”라며 민 청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이 6ㆍ10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 폭력의 상징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2022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문을 연다.

이날 6ㆍ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박종철 열사와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을 거명하며 “시민들이 오가던 곳과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이곳에서 불법 연행, 고문 조작, 인권 침해가 벌어졌다. 단지 민주화를 염원했다는 이유 하나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공포와 고문을 당했다”고 애도했다. 이어 “죽음 같은 고통과 치욕적인 고문을 견뎌낸 민주 인사들이 ‘독재와 폭력’의 공간을 ‘민주화 투쟁’의 공간으로 바꿔냈다”며 “이 불행한 공간을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은 마술 같은 위대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엄혹한 시절을 이겨내고 끝내 어둠의 공간을 희망과 미래의 공간으로 바꿔낸 우리 국민들과 민주 인사들이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017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30주년 기념식 이후 3년 만에 기념식에 참석했다. 기념식엔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과 함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심상정 정의당,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 여권 인사들도 자리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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