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로 원격수업, 학대사실 발견 어려워
대면조사 없어진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탓도
“재난 때도 아동보호 방안 강구해야”
7시간 이상 여행용 가방에 갇혔다 숨지고, 계부가 프라이팬에 손가락을 지지는 등 아동학대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지만 이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는 피해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원격수업만 하다 보니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대면할 일이 없었던 탓이다. 원격수업이 아동학대 조기 발견에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 속에 실제 올해 상반기 아동학대 의심 신고도 20% 안팎 준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아동 구호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이 경찰청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1~4월 아동학생 신고건수에 따르면, 학기 초인 3, 4월 신고건수는 각각 887건과 999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30건, 1,207건과 비교하면 3월 13.9%, 4월 17.2%가 각각 감소했다. 올해 1, 2월 신고건수(1,838건)가 지난해 같은 기간(1,628건)보다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3, 4월 신고건수 감소는 더 두드러진다.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접수된 학대 의심 신고 현황도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건복지부 관계자는 “통계 보정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긴 어렵다”면서도 “신종 코로나가 확산된 올 2~5월 아동학대 의심 신고 건수는 작년 동기 대비 매달 20% 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통상 국내 아동학대 신고는 겨울방학 기간인 1, 2월 줄었다가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이후 늘어난다. 집에서 학대 받던 아이들이 등교 이후 교사나 친구들에 의해 피해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올해만 보면 아동학대 신고는 여전히 ‘방학 중’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학대 받는 아이들이 조기에 발견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예견됐던 일이다.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교사가 먼저 학대 정황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학생 스스로 학교에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충분한 라포(rapportㆍ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충남 천안시에서 숨진 남학생이 여행용 가방에 갇혔던 시각에도 원격수업에 출석한 상태였다.
‘학대 고위험군’ 아동을 선별해내는 복지부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신종 코로나 여파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점도 문제다. 2018년 도입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장기결석, 영유아 건강검진ㆍ예방접종 실시 여부, 병원기록 등을 토대로 학대 고위험군 아동을 선별해 해당 읍ㆍ면ㆍ동에 통보하면 지자체 공무원이 가정을 방문조사 후 조치를 취하지만, 올 1월 신종 코로나 확산 이후엔 방문 자체가 중단됐다.
아동학대 사례가 잇따르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단했던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대면 조사를 다음달부터 다시 시작하고, 연말엔 만3세 아동의 소재와 안전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교사들이 등교한 학생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신고의무 교육도 강화할 예정이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감염병 등 재난 상황에서 아동을 보호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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