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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를 보셨습니까? 남북 삐라 70년 변천사

입력
2020.06.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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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What]한국전쟁 때부터 본격 사용… 신고하면 학용품 주기도

DJ정부 이후 탈북 단체가 주도…북한 정권 자극하는 내용으로 갈등 일으켜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4월 14일 경기 연천군 백학면 백령리에서 대북 선전용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4월 14일 경기 연천군 백학면 백령리에서 대북 선전용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뉴시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공개적으로 대북 선전용 전단(삐라)에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삐라’가 때 아닌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중년 이상은 삐라라는 단어가 익숙할 법도 하지만, 20대 이하는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어느 나라 말인지조차 모를 정도로요.

삐라는 광고전단, 벽보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빌(bill)’에서 유래했습니다. 일본인들이 빌을 ‘비루’라고 표현했고,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삐라라고 발음하면서 선전용 전단을 의미하는 용어로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물론 표준어는 아닙니다.

북한이 살포한 대남 선전용 전단.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 작업이 본격화된 1960~70년대에 민중 위주의 나라,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내용의 삐라를 살포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살포한 대남 선전용 전단.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 작업이 본격화된 1960~70년대에 민중 위주의 나라,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내용의 삐라를 살포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삐라는 최근 논란이 된 것처럼 대북 선전용 전단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북한에서 살포하는 대남 선전용 전단도 삐라라고 부르는데요. 한때 대남 선전용 전단이 우리나라에 골칫거리였던 시기도 있었어요.

아마 학창시절 우연히 주운 전단을 경찰에 신고해 공책 등 학용품을 받아 본 분도 꽤 있을 거에요.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 처리 규칙’에 근거한 건데요. 경찰은 반공ㆍ방첩이 강조되던 시기, 대남 선전용 전단 수거 촉진을 위해 이러한 규칙을 만들어 어린 신고자들에게 공책, 연필 등의 상품을 줬어요. 그만큼 북한에서 보내오는 전단이 많았다는 의미겠죠. 요새도 공책을 주냐고요? 그렇진 않아요. 경찰이 수거 실적이 ‘0’에 가깝자 해당 규칙이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 2007년에 전격 폐지했거든요.

대남ㆍ대북 선전용 전단.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요? 1950년 한국전쟁에서 유엔군과 북한군이 심리전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유엔군은 무려 25억장이 넘는 전단을 북한 지역에 살포했다고 해요. 이에 당시 살포된 전단에는 영어가 적히기도 했죠. 북한군과 함께 중공군(중국군)을 목표로 삼아 중국어가 쓰여지기도 했고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북한 인민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을 상대로 심리전에 사용했던 지폐 모양의 삐라. 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북한 인민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을 상대로 심리전에 사용했던 지폐 모양의 삐라. 연합뉴스

휴전 후에는 본격적인 ‘삐라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1960~70년대에는 남북 모두 체제 경쟁에 중점을 둔 전단을 만들었어요. 북한에서는 남한의 유신독재를 비판하거나 남한보다 잘 산다는 점을 강조했고, 남한에서는 북한과는 다른 자유로운 생활을 강조했습니다.

1980~90년대 북한에서 살포한 대남 선전용 전단에는 의외의 인물도 등장했어요.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인데요. 북한은 군사 독재로 인해 남한 주민들이 자유를 억압당했다는 내용의 전단을 종종 뿌렸다고 해요.

반면 우리나라는 정보부대의 대북 심리전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강수연 등 당대 톱 여배우의 사진을 보내거나 사진이 들어 있는 잡지 그리고 워크맨 등을 함께 담은 패키지를 북으로 살포해 북한 주민들의 눈길을 끄는 전략을 펼쳤다고 하죠. 기상 관측 자료까지 참고해서 최대한 북한 주민들에게 많이 도착할 수 있게 신경을 썼다는 말도 들립니다.

21세기 들어서는 큰 변화가 있었어요. 우선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상호 비방 중단’에 합의하면서 양쪽 정부의 심리전이 공식적으로 중단된 거예요.

그러자 탈북자 단체가 나섰는데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전단 살포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옮겨오면서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뻔한 종이 전단 대신 전단 꾸러미를 매단 비닐 풍선을 북으로 날려 보내기 시작한 건데요. 여기에는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동영상이 담긴 USB 메모리와 DVD, 1달러짜리 지폐 등이 함께 담기기도 했어요. 이전까지 북한 체제를 단순히 비판하거나 남한의 장점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북한 3대 세습의 실상을 꼬집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어요.

1980년대 여배우들의 사진을 활용한 대북 선전용 전단. 주간한국,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년대 여배우들의 사진을 활용한 대북 선전용 전단. 주간한국,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런데 대북 선전용 전단. 정말 효과가 있기는 한 걸까요? 영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요. 탈북자 단체는 북한 정권 유지에 타격을 준다고 주장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전단을 받아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어요. 한반도 상공엔 대체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불어 전단이 멀리 날아가기 어렵다는 거예요. 실제로 한반도는 여름철엔 북태평양에서 바람이 불어오지만, 겨울부터 봄까지는 대륙에서 불어오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5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북한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단이 멀리 가봐야 북강원도나 황해도 경계지역이고, 대다수가 비무장지대에 떨어지거나 역풍으로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북한 인민들의 각성이다. 인민들이 3대 세습 독재의 진실을 몰라야 하는데, 우리가 진실을 알려주니까 치명적이지 않겠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천명의 탈북민들이 우리가 보낸 전단을 받아봤는데, 멀리 못 날아간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자료조사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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