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위해서 10억달러(1조2,200억원) 상당의 자금세탁을 한 혐의를 받는 미국 시민권자 남성이 세탁한 자금의 상당수를 아랍에미리트(UAE)로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AP통신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내 무역업체 A사의 대표인 이 남성은 이란과 제3국가 중계무역을 하면서 위장거래를 통해 이란 관계자들에게 달러화 등을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울러 세탁 과정에서 연루된 IBK기업은행은 미국에 1,000억원대 벌금을 내기로 합의한 상태다.
미 시민권자 신분으로 이란을 대신해 중개무역을 해 온 80대 알래스카 시민 ‘케네스 종’은 2011년 2월부터 7월까지 기업은행 원화 결제계좌를 이용해 수출대금을 받고, 가짜 대리석 타일 수출계약서와 송장을 이용해 미 달러화로 인출해 해외 이란 관계자들에게 송금했다는 혐의로 미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 한국 검찰도 A사가 대리석 허위거래를 통해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에서 자금을 해외 5~6개국에 분산 송금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불법 이체’된 자금이 10억달러에 달하는데, 이 중 상당수가 현재 UAE에 있다는 것이다. AP는 이날 미 연방법원이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세탁 자금 대부분이 UAE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은 UAE 7개 도시국가(토후국) 중 한 곳인 라스알카이마에서 보유 중인 2,000만달러를 압류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2,000만달러는 자금 세탁에 관여한 이란 국적자 3명이 유럽 동부 조지아공화국 소재 호텔을 매입하려다가, 미국 재무부 제재를 받아 현지 라스알카이마 당국이 보유 중이라고 AP는 설명했다.
앞선 보도들에 따르면 케네스 종은 2016년 12월 대(對)이란 제재 위반과 불법 자금세탁 등 모두 47건의 혐의로 미 검찰에 기소됐고, 2018년 한국 법원에서도 세법 관련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현재 수감 중이다. 케네스 종의 아들 미첼 종 역시 같은 혐의로 30개월의 징역형과 1만달러 벌금형 등을 선고받았다. 미 검찰은 케네스 종 부자 외에도 이란 국적자 3명 등 모두 5명이 대이란 제재 위반과 자금세탁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자금 세탁 과정에 연루된 기업은행에 대해 미 검찰은 송금 중개 과정에서 미국의 자금세탁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파악했다. 이에 기업은행 뉴욕지점은 기소를 유예 받는 대신, 미 사법당국에 8,600만달러 벌금을 내는 것에 올해 4월 합의했다. 이중 5,100만달러는 미국 검찰에, 3,500만달러는 뉴욕주금융청에 납부한다. 당시 로이터통신은 기소유예 기간은 2년이라고 전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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