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소비 한다던 2030, 왜 고가 명품에 열광하나

이전기사

구독이 추가 되었습니다.

구독이 취소 되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가치소비 한다던 2030, 왜 고가 명품에 열광하나

입력
2020.06.05 09:00
0 0

 [이슈레터] 가치 소비ㆍ재테크 수단ㆍ군중 심리까지 복합 작용 

명품 브랜드 샤넬의 제품에 대해 7~17% 가격 인상이 예정된 전날인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 샤넬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한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데요, 기업들은 채용을 연기하는 한편 직격탄을 맞은 여행, 호텔, 교육 업계 등은 무급 휴직이나 퇴사 위기에 몰렸습니다. 사람들이 지갑을 선뜻 열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소매업도 울상입니다. 정부는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까지 지급해야 했는데요.

이런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잘나가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명품이라고 불리는 고가 브랜드입니다. 지난 달엔 고가 브랜드 샤넬이 일부 가방 제품 가격을 7~17% 인상하겠다고 하자 인상 전날 새벽부터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다 문을 열자마자 달리는 ‘오픈런’ 현상까지 벌어졌죠.

3일에는 해외 여행 급감으로 면세점에 쌓여 있던 명품 재고가 온라인으로 처음 풀렸는데 이를 사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홈페이지가 마비되더니 인터넷 판매 시작 4시간도 채 안 돼 200개 넘는 품목의 90%가 품절됐습니다.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누가 명품을 사고, 그들은 왜 지갑을 열까요.

 ◇코로나19로 명품족 됐다 

유튜버 슈기가 자신이 산 구찌 운동화를 들고 있는 장면. 슈기 유튜브 캡처

코로나19로 인해 새로 명품족에 합류한 경우가 생겼습니다. 평소 명품에 관심이 없던 이들이 취미였던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명품으로 눈길을 돌렸다는 겁니다.

경기 수원에 사는 직장인 김모(36)씨는 지난달 한 백화점에서 고가브랜드 버버리 벨트백을 260만원 주고 샀습니다. 1년에 서너 번은 해외여행을 가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면서 모아둔 돈을 명품 가방에 쓴 겁니다. 평소 명품을 사지 않았다는 김씨는 “원래 가방을 사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백화점을 들렀다가 돈을 모았으니 명품 브랜드를 사도 되겠다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6)씨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김씨는 지난달 말 백화점에서 266만원짜리 루이비통 가방인 ‘클루니bb’와 29만원짜리 얇은 끈 스타일의 스카프인 ‘방도’를 구매했습니다. 김씨 역시 이맘때쯤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계획이 취소되자 다른 소비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했습니다. 김씨는 “여행자금으로 모아놨던 돈을 어디에 쓸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명품 생각이 났다”며 “스스로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이래서 구매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사자 덩달아 산 경우도 있습니다. 경기 성남 분당구에 사는 김모(27)씨는 최근 샤넬 가방을 660여만원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주변 동료뿐 아니라 결혼식, 모임에 가면 샤넬 가방을 들고 나오는 걸 보고 결국 구입한 겁니다. 김씨는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서 다행이다 싶다”며 “주변 분위기 상 명품이 필수품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 “주변에 본인의 소비능력을 벗어나서 명품을 쓰는 동료도 있는데 나를 위한 보상으로 구매한다고 들었다”며 “할부로 구입하고 일하면서 갚으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명품족 대세는 2030 

고가 브랜드 샤넬의 제품에 대해 7~17% 가격 인상이 예정된 전날인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 직원이 취재진의 촬영을 몸으로 막고 있다. 이한호 기자

그렇다면 실제 누가 명품을 주로 사는 걸까요. 백화점과 패션업체에 물어봤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의 지난해 명품 분야 연령대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20대가 10.8%, 30대가 38.4%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49.2%로 절반에 달합니다. 40대가 25.2%였고 오히려 50대(17.2%)와 60대 이상(7.9%)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습니다. 한 백화점 상품기획자(MD)는 “이제 중간 시장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최고급이나 최저가 시장으로 양극화 되어 있다”며 “2030세대는 물건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3일 면세점 재고를 온라인에 판매한 신세계인터내셔널의 경우는 2030 비중이 더 두드러집니다. 온라인이라는 채널의 특성이 더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20대가 23.9%, 30대가 46.2%로 구매자 10명 중 7명은 2030세대였습니다. 김영 신세계인터내셔널 부장은 “여행도 가고, 면세쇼핑을 즐기던 2030세대가 명품으로 눈을 돌린 것 같다”며 “이번 면세품 재고 쇼핑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 인기가 많아 담당자들도 놀랐을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10대들도 명품 구매행렬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고3 김모(18)양은 지난해 9월 32만원짜리 루이비통 카드 지갑과 10만원대 샤넬 화장품을 샀는데요. 고1때부터 친구 어머니가 하는 고깃집에서 음식을 나르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에 명절에 받은 용돈을 합쳐서 명품을 꾸준히 구매하고 있습니다. 처음 명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역시 친구들입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명품을 갖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욕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양은 “남한 테 가는 게 아니라 자신한테 쓰는 거니까 괜찮다”며 “오래 사용하고 그 다음엔 중고로 팔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쓰다가 되팔면 되지, 리셀의 유혹 

온라인 중고사이트 중고나라에 올라온 샤넬 가방. 중고나라 카페 캡처

2030세대가 큰 금액임에도 명품을 사는 것은 중고품으로 되파는 ‘리셀(re-sell)시장’이 활성화한 것도 영향을 줍니다. 샤넬은 가격이 꾸준히 오르다 보니 중고품으로 되팔아도 남는 장사라는 ‘샤테크(샤넬과 재테크의 합성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지요. 한 백화점 관계자는 “샤넬은 주로 인기 모델이 클래식 제품들”이라며 “물량이 부족해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고 말합니다. 실제 중고품을 거래하는 사이트에서는 수백만원 대 가방들이 여럿 거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가 브랜드뿐만이 아닙니다. 중저가 브랜드가 한정판으로 내놓는 운동화들도 리셀의 주요 품목입니다. 지난달 26일 나이키와 미국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 앤 제리스가 협업한 스니커즈 한정판은 판매가격이 12만9,000원이었는데요. 너도나도 사겠다고 몰리면서 200만원에 재판매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20대 때부터 20년 넘게 명품을 사고 팔아왔던 김모(41)씨는 “예전보다 명품 입문(엔트리)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며 “특히 샤넬 같은 고가브랜드의 기본(클래식) 모델의 경우 재질이나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는 반면 가격은 수직 상승하기 때문에 되팔 수 있다고 보고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리셀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생겨난 새롭게 수익을 얻는 방법인 것 같다”며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물품을 구입하고 되팔아 재테크를 하는 사례를 접하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취업도 쉽지 않고 돈 벌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봅니다.

 ◇할인 때 샀다고 ‘돈 아꼈다’ 착각은 안돼 

인터넷 방송 등에서 명품을 구매한 후기를 담은 영상을 찍는 ‘명품 하울(haul)’이 인기다. 하울은 구매한 제품을 품평하는 동영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유튜버 한별Hanbyul 영상 캡처

2030세대가 고가 브랜드에 선뜻 지갑을 여는 것을 두고 곽금주 교수는 “알뜰하게 살면서 본인이 사고 싶은 것에 돈을 집중적으로 쓰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합니다. 빚을 내거나 자신의 재산 상황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소비를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다른 물품에 쓸 돈을 아껴 정말 갖고 싶은 물건, 좋아하는 물건을 사는 행태는 현명한 소비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다. 먼저 남들이 하니까 나도 따라 해야 한다는 심리 때문에 명품이나 세일 상품을 구매하게 되면 반드시 후회가 따르게 된다는 겁니다.

또 가격 인상 전에 샀거나 할인 판매를 통해 샀다고 해서 돈을 벌었다는 건 착각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합니다. 곽 교수는 “가격이 오르기 전에 물건을 사면 돈을 쓰는 것임에도 오른 만큼 돈을 벌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런 이유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품을 사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아낌없이 소비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산다고,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또는 할인을 한다고 ‘광클’(빠른 클릭)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임수빈ㆍ김예슬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이슈레터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