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정부 고객만족도 조사 대응자료 입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ㆍ임대 아파트 관리소 직원을 동원해 정부의 고객만족도(PCSI) 조사에 대응하는 적나라한 실태가 드러났다. 사전에 포섭한 입주민이 설문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고객 만족도 조사원의 성향과 동선까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3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LH의 ‘PCSI 대응 자료’에 따르면 LH 수도권본부는 올해 1월 서울, 경기 입주 1~3년차 35개 단지(3만2,027가구) 관리사무소에 정부 평가에 적극 대응을 지시하는 공문을 보냈다.
LH 공문에는 관리사무소가 지켜야 할 3단계의 대응방법이 담겼다. 1단계에는 “방문 조사원의 출입을 확인한 뒤 관리사무소로 안내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2단계에선 “조사원의 성향을 파악하고 미리 준비된 단지 내 우호고객(입주민)이 설문조사를 받도록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목에선 ‘매우중요’하다라고 표시하며 강조했다. 여기서 우호고객은 관리사무소가 평소 관리해온 친분이 있는 입주민을 말한다. 3단계에선 이런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우호고객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조사원의 성향을 파악해 LH현장 담당자에게 인계하라고 했다. LH가 부당한 방법으로 대응한 PCSI 조사는 올해 2,3월 진행됐다.
LH의 평가 조작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관리사무소가 제안한 우호고객 대상 조사가 성사되면 해당 우호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평가점수 만점을 부탁하라”고 독려했다. 악성 입주민 가구는 방문조사에서 배제할 것도 알렸다. LH아파트에 민원을 제기하는 입주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사원이 관리사무소 요구를 거부하면 재 설득하고, 조사원이 단지를 나갈 때까지 동향을 주시해 보고하라는 지시사항도 확인됐다.
한 아파트 관계자는 “LH의 요구로 한달 전부터 우호적인 입주민을 섭외하고, 만족도 평가 점수가 잘 나오도록 관리해왔다”며 “LH와 위탁관리계약을 맺은 업체 소속인 관리사무소라 부당하지만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LH는 일부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대면 조사의 특수성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했다. LH관계자는 “입주민이 집을 비운 경우도 많고, 조사를 거부하는 가구도 상당수여서 조사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사무소를 통해 미리 조사대상 가구를 섭외한 것”이라며 “평가를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향후 PCSI 조사원이 관리소를 경유하지 않도록 정부에 조사방식 개선을 건의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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