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의 흑인 남성 치사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건 일주일 만에 시위는 수도 워싱턴DC를 비롯한 140여 도시로 번졌다. 경찰과 충돌이 과격해지고 방화 약탈도 빈번하다. 경찰 대응 과정에서 5명이나 숨졌다. 40개 주요 도시에 야간 통행금지령이, 26개주에 주 방위군 소집ㆍ배치령이 내려졌다. 인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로 미 전역이 혼돈에 휩싸였던 196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보여 주는 치사 사건 자체가 우선 놀랍다. 사태를 이 정도로 악화시킨 데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이 너무 크다. 대통령으로서 공권력 남용을 비판하며 갈등 확산을 차단하고 화해와 통합을 이뤄야 함에도 사건 직후부터 시위대를 “폭도들” “급진 좌파”로 낙인찍기 바빴다.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며 거듭 “군대 투입”으로 협박했다. 폭력, 약탈 행위를 용납해선 안되지만 국가 최고지도자가 시위대를 뭉뚱그려 조직 범죄자 취급해 시민의 잠자던 분노를 촉발하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최근 홍콩보안법 문제로 중국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법에 반대하는 홍콩의 시위를 지지하며 미 하원 의장이 썼던 “아름다운 광경”이라는 말을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그대로 미국에 돌려주고 있다. “미국 여러 주로 번지는 아름다운 광경”은 “미국에 내재한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의 산물이며 “미국은 이런 밑바닥 분노를 진정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당 독재의 강권 정치를 홍콩에 강제하는 중국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트럼프 정부도 마찬가지로 국제적 조롱거리가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로 재미 한인들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시위가 시작된 미네소타주 10곳 등 미 전역에서 한인 상점 79곳이 피해를 봤다고 한다. 1992년 LA 흑인 폭동 당시 이 지역 전체 피해액의 절반 가까이가 한인 상점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아직 그럴 조짐까진 없고 인명피해도 나오지 않았지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외교 당국은 사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재외국민 피해 최소화에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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