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윤 총장-특수부라인 노골적 겨냥
공수처 독립성과 국민 신뢰 흠집 우려
檢개혁과 공수처 안착 원하면 자제해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다음달 중순 출범한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언급대로 “세 분(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한결같은 꿈”이 이뤄진다. 참여연대의 첫 입법 청원(1996년 11월) 이후 근 24년 만이다.
공수처의 닻을 올리기까지 진보 정권은 숱한 난관에 부딪치며 좌절을 맛봐야 했다. 검찰은 조직적 반발과 저항을 거듭하다 급기야 검찰개혁을 주도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기화로 수사를 통한 반격까지 가했다. ‘조국 사태’는 국민 분열과 사회 갈등을 촉발하고 진보 정권의 오만과 내로남불 식 가치 인식을 노정하며 현 정권에 심각한 내상을 입혔다.
여당은 공수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태워 20대 국회를 동물 국회로 전락시켰다. 야당은 장외투쟁으로 치달았고,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여야 간 공성전이 벌어졌으며, 대규모 고소ᆞ고발전이 이어졌다. 민생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이런 지난한 과정에 피해 막심한 혈전까지 치르고 탄생하는 공수처인 만큼 현 정권엔 귀하디 귀한 ‘옥동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렵게 쟁취한 공수처라면 제대로 착근시키는 게 집권 세력의 책무다. 하지만 21대 국회 출범을 계기로 거대 여당과 그 주변에서 나오는 발언들이 심상치 않다. 공수처가 출범도 하기 전부터 공수처 존립의 근간인 국민 신뢰 형성을 저해할 만한 언사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국민에게 공수처가 권력의 하부 기관처럼 비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대표적인 게 ‘공수처 1호 사건’ 발언들이다. 공수처 수사 대상 7,000여명 중 판ᆞ검사가 5,500여명이니 판ᆞ검사의 구체적 비리나 불법 행위라면 문제될 게 없다. 공수처 출범 후 고소를 하든 고발을 하든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여당과 그 주변의 발언들은 범죄 혐의의 객관적 증거 없이 의혹과 정황만으로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른바 ‘특수부 라인’ 검사들을 콕 집어 겨냥한다.
윤 총장은 장모 사기 사건, 부인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 사건 등으로 거론된다. 윤 총장 측근 검사장은 채널A 기자와의 유착 의혹으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여기에 최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재수사 이슈가 언론 보도와 여당의 문제 제기로 불거졌다. 한 전 총리 사건의 금품 공여자에 대한 특수부 검사들의 강압 수사 부분을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이 사건들이 공수처 출범 후 불거진다면 공수처장이 수사 여부에 대해 판단을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이 사건들은 누가 봐도 여권이 믿었던 윤 총장의 배신에 대한 분(憤)풀이, 한 전 총리의 한(恨)풀이를 위한 정치적 행위로 비친다. 국회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자 공수처를 여당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기관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만하다.
공수처는 수사기관 간 힘의 균형, 특히 과도한 검찰 권력의 분산을 통한 견제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대통령과 가족을 위시해 4부 요인, 여야 의원 모두가 수사 대상이기 때문에 어느 기관보다 정치적 독립성,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돼야 한다. 공수처법이 처장 후보 추천 과정을 비현실적이라 할 정도로 엄격하게 정해 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1호 사건들이 거론되는 현 상태로 공수처가 출범한다면 공수처장이 윤 총장 등을 향해 칼을 뽑든, 뽑지 않든 어떤 결정을 내려도 공수처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고 그 독립성을 의심받게 된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는 사라지고 오직 정파적 공방만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개혁 대상인 검찰은 다시 권력 부활의 틈새를 모색할 것이다.
단언컨대 이제부터는 여권 인사 그 누구도 공수처 1호 사건 수사를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을, 누구를 수사할지는 수사 요건과 법 절차에 따라 공수처장이 독립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진정 검찰 개혁을 원한다면 여야 어느 쪽에도 연결되지 않는, 대쪽 같은 공수처장 찾기에 힘을 쏟기 바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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