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운동권’ 출신으로 2000년대 국내 4위 휴대폰 제조회사 VK를 일궜던 이철상(53)씨가 10년 세월을 건너 전기자동차 사업가로 국내 경영계로 돌아왔다. 대구와 경기 김포시에 사업장을 두고 전기 버스 및 승합차를 생산ㆍ판매하는 제이제이모터스가 그의 복귀 무대다.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은 그를 포함해 임직원 15명으로 구성된 이 회사는 완성차 생산업체이되 본사는 기획, 디자인, 마케팅 등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차체 및 부품은 국내외 전문업체에 외주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민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아웃소싱을 통한 신제품 상시 출시로 의류산업 판도를 바꾼 자라, H&M 등의 ‘패스트패션’ 사업 모델을 전기차 시장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회사 김포사업장에서 만난 이씨는 “전기차 제조업이야말로 우리나라, 특히 스타트업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단언했다. 배터리, 전기·전자, 디자인 등 내연기관 차를 전기차로 대체할 핵심 산업에서 한국이 이미 세계 정상급 기반을 갖췄을뿐더러, 다자 경쟁구도였던 자동차업계가 현대기아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신생 전기차 회사도 쉽게 손잡을 수 있는 부품제조사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기후·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갈수록 친환경 제품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점도 전기차 미래를 밝히는 요인이다.
이씨는 “전기차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이 될 것”이라며 “머잖아 국내에 연간 5조원대 순이익을 내는 전기차 회사가 4개쯤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기기를 모두 ‘잡아먹었던’ 휴대폰이 (전기차에)잡아먹힐 때가 왔다”고도 했다. 휴대폰과 비교할 수 없는 고성능 컴퓨팅 능력을 갖춘 전기차가 개인기기화하면서 삶의 혁신을 일으키리란 것이다.
VK의 전성기(2004년 기준) 시절 ‘2억불 수출의탑’ 수상과 함께 연간 4,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며 ‘벤처 신화’를 썼던 이씨는 2006년 부도를 맞고 3년 뒤 회사 문을 닫았다. 이후 베트남에서 봉제사업을 하는 등 재기를 모색하던 중 2018년 초 제이제이모터스를 창업했다. 전기차 생산을 위한 인증과 거래처 구축으로 첫해를 보낸 회사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대형버스(45인승) 중형버스(35인승) 승합차(15인승)를 생산해 48억원어치를 판매했고 올해는 250억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차체는 중국, 모터 브레이크 서스펜션은 구미에서 조달하며 배터리(삼성SDI)와 일부 전장부품은 국산을 쓴다. △빠른 신차 개발(6개월~1년) △원가 경쟁력 △1회 충전당 월등한 주행거리가 회사가 내세우는 강점이다.
이씨는 “기존 완성차업체와 겹치지 않으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업영역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이 애용하는 차량이지만 안전ㆍ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내년 단종될 가능성이 높은 ‘다마스’ 모델을 전기차로 만들어 공급하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 배송용 전기 승합차를 자체 브랜드로 납품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회사 관계자는 “배송차량 10만대를 전기차로 교체한다는 것이 아마존의 계획”이라며 “통상 180~200㎞ 수준인 1회 충전당 주행거리를 300㎞로 늘리고 물류데이터 교신 시스템을 갖춘 차량을 개발해 판로를 뚫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전대협 의장 권한대행 출신으로도 잘 알려진 이씨는 “586세대는 이미 우리 사회의 주류”라며 “그간 586세대가 정치와 통일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혁신 성장에 보다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 진보라면, 매일 시장에서 치열하게 소비자 요구를 파악하고 혁신하는 기업 활동이야말로 가장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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