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커밍아웃 후 해고…대법 증언대 선 트랜스젠더 '에이미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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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커밍아웃 후 해고…대법 증언대 선 트랜스젠더 '에이미 스티븐스'

입력
2020.06.01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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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경력의 장의사 에이미 스티븐스는 2014년 성전환수술을 받고 트랜스젠더 여성이 됐고, 커밍아웃 직후 직장에서 해고 당했다. 직장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 ‘유족의 애도를 방해하는 존재’라는 게 해고 사유였다. 해고를 편든 이들은 1964년 시민권법이 금지한 성차별의 ‘성(sex)’에 성 정체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차별이 아니라 헌법 상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따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성 소수자 고용 차별에 맞서 트랜스젠더 최초로 연방대법원 증언대에 섰던 그가 최종 판결을 앞두고 별세했다. AP 연합뉴스.

게토(ghetto)의 철조망은 차별의 상징일 순 있어도 은유로선 허술하다. 실제 차별의 경계가 그리 단순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별의 담장은 대부분 미로 같은 구비들로 교묘히, 겹겹이 존재한다. 그래서 넘고 넘다가 기운을 잃게도 하고, 이리저리 휘돌려 방향을 잃게도 한다. 눈 앞의 벽을 못 보는 이들은 ‘다 왔다’고 착각도 하고, 스스로도 차별 받으면서 다른 차별의 가해자가 되게도 한다. 이성은 과신할 수 없는 도구이고, 법치 시대의 법이란 것도 법원 앞 테미스(Themis)의 천칭처럼 결코 반듯하지 않다. 성 소수자 차별이 그 예다. 성 소수자는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 숱한 법을 근거로 차별에 저항하지만 반대편 저울대에는 언제나 종교적 신념으로, 또 나름의 이성과 윤리관으로, 불완전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어떤 법의 이름으로, 앙당그리며 매달린 이들이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 에이미 스티븐스(Aimee Stephens)는 성 정체성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지난해 10월 미 연방대법원 증언대에 섰던 최초의 ‘인간’이다. 그가 기댄 법은 자유ㆍ평등의 건국 이념을 구현한 연방 (수정)헌법이었고, 인종 피부 종교 성별 출신 국가를 근거로 한 “차별의 역사를 종식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김두식 ‘헌법의 역사’)한 1964년의 ‘시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이었다. 그를 해고한 이들이 내민 법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연방 헌법이었고, 93년의 ‘종교자유회복법(RFRA)’이었다. 그들은 64년 법이 금지한 성차별의 성은 타고난 생식기에 근거한 ‘남성과 여성’일 뿐, 성 정체성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에이미는 헌법 상의 권리를 지닐 만한 ‘인간’에도, 민권을 보장받는 ‘시민’에도 못 미치는 존재였다.

해고당한 뒤 보험 혜택을 잃고 신부전과 호흡기 질환 합병증으로 고통 받으며, “나도 똑 같은 인간”이라고 법정에서 호소했던 에이미가 대법원 판결을 목전에 두고 5월 12일 별세했다. 향년 59세.

에이미는 1960년 12월 7일, 노스캐롤라이나의 보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트랜스젠더라는 존재 자체를 모른 채 성장했다. 유년 시절 꿈은 침례교 성직자가 되는 거였지만,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장의업체에서 일하면서 교회 연단보다 연도(憐悼)의 공간이 자신에게 더 맞는다고 여기게 됐다. 2018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100주년 에세이에 그는 “인생의 가장 취약한 시간을 견디는 이들을 위로하는 일이 내 소명이란 걸 깨달았다”고 썼다. 장의사로서 30여 년을 살며 그는 “한없이 꼼꼼하고 성실한 동료”라는 평가를 받았고, 96년부터 일하던 업체(R.G & G.R Harris Funeral Homes)에서 2013년 팀 책임자(director)로 승진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 해고 당했다. 사장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직후였다.

그는 5살 무렵부터 또래 아이들과 다르단 걸 막연히 느꼈다고 말했다. “엄마가 내다 버린 옷을 입곤 했는데, 아주 잠깐이어도 그 순간 진짜 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당연히 자기를 ‘남자’라 여겼고, 오래 알고 지내던 도나(Donna Stephens)와 결혼해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 교외 레드퍼드(Redford)에 정착했다. 그는 직장에서는 바지 정장을 입는 남성 장의사로, 집에서는 남편으로, 주말마다 교회를 가는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2008년 우울증이 심해져 심리치료를 받으며 그는 비로소 자기를 바로 알기 시작했다고 한다. 상담가는 “내게 잘못된 건 없다”고, “스스로를 감추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예전처럼 똑같이 살아갈 수도,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어떤 지점에 닿은 거였다”고, “더 이상 서로 다른 두 존재로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듬해 아내에게 고백했고, 도나는 남편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그는 여성복을 입고 마트에 가고 도나와 함께 외식도 했지만, 타인들의 말과 시선이 못 견딜 만큼 무례하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나아갔지만, 맨 먼저 교회가 그를 밀쳐냈고, 직장에서도 수군거리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렇게 지쳐가던 2012년 11월 어느 새벽, 그는 몰래 권총을 들고 집 마당에 나선 적도 있었지만, 긴 망설임 끝에 “더 살아야 할 많은 이유들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듬해 초, 총을 드는 것보다 큰 용기로 펜을 들고, 직장 동료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내 마음과 조화하지 못하는 몸에 갇혀 살아왔고, 그 때문에 엄청난 절망과 고립감에 시달려왔다(…) 당신들 중 일부는 내 진실을 수긍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나 역시 나를 수긍하지 못해 평생을,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동료들 대부분은 그를 격려했다. 용기를 얻은 스티븐스는 성전환수술을 받기로 한 여름 휴가를 앞두고 사장에게도 편지를 건넸다. “내 사랑하는 아내의 지지에 힘을 얻어, 이제 내 마음이 이끄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휴가 후 2013년 8월 26일 복귀할 때는 참된 나인 ‘에이미 오스트레일리아 스티븐스로서’ 그에 합당한 복장을 갖춰 출근하겠다”(WP)는 내용이었다. 2주 뒤 사장(Thomas Rost)은 스커트 정장 차림의 그에게 해고를 통보하며 ‘소송을 걸지 않는 조건’이라며 퇴직 상여금을 건넸고, 스티븐스는 그 돈을 거부했다. “돈보다 원칙이 중요했다.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이유로 해고를 당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Time)

2015년 동성혼 법제화 이후 보수 교회진영 등의 성 소수자 차별은 더 가시화하고 난폭해졌다. 식당 출입을 막고, 축하 케이크 주문 받기를 거부했다. 숱한 소송이 잇따랐다. ‘종교적 신념’과 ‘양심의 자유’가 그들에겐 차별의 근거였다. ACLU 사진

64년 민권법 집행기구로 65년 출범한 연방기구인 ‘연방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가 2014년 스티븐스를 대리해 업체 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ACLU 법률팀이 가세했다. 업체를 도운 건 보수 기독교연대단체인 ‘자유옹호연합(ADF)’이었다. 트랜스젠더 고용 차별을 둘러싼 첫 소송이, 연방법이 금지한 성 차별 범주 안에 성 정체성(gender identity)과 성 표현(androgyny, masculinity 등)이 포함되는지를 둘러싼 포괄적 성 소수자 고용 차별 소송이 그렇게 시작됐다.

업체 사장은 “ ‘그(He)’가 회사 복장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해고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ADF 변호사는 “스티븐스 부부는 자신들의 선택에 따른 응당한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며 “사장의 결정은 스티븐스와 여자 화장실을 함께 써야 하는 여성 직원 및 고객들의 심정, 특히 애도해야 할 유족의 마음을 헤아린 합당한 결정이었다”고 변호했다. 1심 법원은 사장(ADF)의 편을 들었고, 2018년 신시내티 연방항소법원(6th Circuit)은 스티븐스의 편을 들었다. 항소법원은 1989년 연방대법원 판례, 즉 ‘젠더 정형성(gender stereotypes)’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승진 심사에서 지속적인 차별을 겪은 앤 홉킨스(Ann Hopkins, 1943~2018)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시민권법 7조- 성차별 금지’ 위반 판결을 내린 예(Price Waterhouse v. Hopkins)를 근거로, “회사측의 해고가 ‘조금도(at least in part)’ 피고용인의 성(sex)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분석적으로 불가능하다(analytically impossible)’”고 밝혔다. 업체와 ADF는 상고했고, 연방 대법원은 2019년 4월 심리를 시작했다.

헌법 법리 해석을 둘러싼 ‘원의주의(Originalism, 혹은 Textualism)와 ‘비원의주의(Non-Originalism, 혹은 Living Constitution)의 대립은 유서 깊은 법철학의 쟁점이다. 전자는 헌법을 제정 당시의 의도(자구)에 고정된 것이라 여겨 법관의 자의적 해석을 경계하는 반면, 후자는 법 제정 취지 및 의미가 자구보다 중요해서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맞춰 적극적 해석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자는 대체로 보수적이어서 연전 작고한 미 연방 대법원 앤터닌 스칼리아가 대표주자였고, 후자는 진보 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스티븐스 재판의 핵심 쟁점도 그것, 즉 64년 민권법 해석이다. ADF는 당시 입법자들이 차별을 금한 범주는 ‘생물학적 성(biological sex)’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989년에 이어 1998년에도 대법원은 성 소수자 차별을 금했다. 직장 내 남성 동료로부터 ‘호모’라는 지속적인 모욕과 성희롱, 성추행, 거기다 성폭행 위협까지 당한 한 게이 남성이 제기한 소송(Oncale v. Sundowner Offshore Services, Inc.)에서 대법원은 게이 정체성을 성의 범주로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대법 판결문을 쓰고 낭독한 게 보수 법관의 상징인 스칼리아였다. 그는 동성간 성폭력도 비록 법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민권법 7조(Title Ⅶ)’의 성차별과 폭력에 해당된다며,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다만) 남성에 대한 남성의 직장 내 성희롱이 민권법 7조 입법자들이 염두에 두었던 주요한 악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의회는 시대의 변화와 환경에 맞춰 법을 제정한다. 따라서 법 조문도 그 변화에 따라 확장하거나 축소 해석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낡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변질된다”고 말한 바 있다. 2019년 4월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를 금지한 바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무 차관 노엘 프랜시스코는 그 해 8월 대법원에 제출한 유권해석 질의서에 “64년 법은 생물학적 성(‘Sex’)에 국한할 뿐 ‘성적 취향(sexuality)’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응답, 연방 정부가 연방기구(EEOC)와 맞서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청문회장을 향하는 에이미 스티븐스. 그는 차별과 질병과 생계의 고통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나도 인권을 지닌 국민이고, 시민권법의 보호를 받는 시민”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이 옳은 판단을 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ACLU 사진.

ADF측이 꺼내든 종교자유회복법은 종교 의례시 마약을 쓰기도 하는 미국 인디언 등의 소수 종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1993년 제정됐다. 주나 연방 정부가 종교 자유를 제한할 경우 공동체에 ‘중대한 법익’이 있어야 하고, 그 경우에도 당사자에게 ‘막대한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게 법의 요지다. 저 애매한 규정의 법을 누구보다 반긴 게 보수 기독교회였고, 성 소수자 차별의 새로운 무기로 적극 활용했다. 이후 미국 22개 주와 워싱턴D.C 특별구가 별도의 주법으로 성 소수자 차별 방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남부 바이블벨트를 중심으로 한 나머지 주들은 정반대의 종교자유법과 판례로 소수자 인권을 차별해왔고, 특히 2015년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법제화 이후 ‘종교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며 더 사납게 저항해왔다. ‘Married Sunday, Fired Monday(일요일에 결혼하고, 월요일에 해고당하다)’는 2015년 이후 부각된 성 소수자 차별 저항 구호지만, 스티븐스의 예처럼, 차별은 더 전부터, 당연하다는 듯 이어져왔다.

뉴욕 주 캘버튼 롱아일랜드의 스카이다이빙 강사 도널드 자르다(Donald Zarda)가 함께 몸을 묶고 다이빙하던 한 여성에게 ‘염려 말라’는 의도로 자신을 “100% 게이”라고 소개했다가 2010년 해고당했다. 그는 소송 중이던 2014년 다이빙 사고로 숨졌다. 조지아 주 클레이턴 카운티 소년법원의 비행청소년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제럴드 보스토크(Gerald Bostock)도 2013년 한 지역 게이 소프트볼 동호회에 가입했다가 해고 당했다. 연방대법원은 스티븐스의 소송까지 세 건을 병합해 심리 중이다.

성 소수자 권리의 중대한 변곡점이 될 대법 판결을 앞두고 장외전도 치열했다. 보수 기독교 CEO 네트워크인 ‘C12’는 ADF의 논리를 반복하며 “64년 반차별법 어디에도 성정체성ㆍ지향은 흔적조차 없다”고 성명서를 냈고, 애플, 아마존을 비롯한 206개 기업 CEO들도 “단 한 사람도, 성 정체성과 지향 때문에 취업, 급여, 해고와 성희롱 등 어떤 형태의 차별도 당해선 안 된다”고 선언했다. 2011년 한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직장인 약 90%는 직장에서 성희롱과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

해고 직후 스티븐스는 지역 장의업체 10여 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채용되지 않았다. 이력서 첨부자료에 적힌 이름과 지원자의 이름이 달라서, 과거 채용서류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이 달라서였다. 한 병원 법의학 부검팀 조수로 취업했지만 건강 악화로 그만둬야 했다. 그는 보험 없이 주 3회씩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고 아내 도나가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했지만 쪼들렸다. 부부는 트럭을, 피아노를 잇달아 팔아야 했다.

2019년 10월 그는 투병으로 쇠한 몸으로 워싱턴 D.C 대법원 증언대에 섰다. 그는 “법원 바깥에서 내 이름을 연호하며 사랑한다고 외쳐준 시민들(…) 덕에 하루하루 일어나 싸울 힘을 얻고, 나 같은 처지의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줄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자칭 “변덕 심한 양성애자 유대인 여성”인 스탠퍼드대 법학과 교수 파멜라 칼런(Pamela Karlan)은 공판이 열릴 때마다 법원 앞에서 1인 피켓시위를 벌였고, ACLU 법률팀 일원으로도 활동해왔다. 그는 “만일 고용주가 남성과 데이트한 남자 직원은 해고하고 여자 직원은 해고하지 않았다면, 그는 민권법 7조를 위반한 셈이다. 고용주는 여성보다 남성을 더 열등한 존재로 차별한 것이고, 명백히 성(Sex)적인 차별이다”라고 주장했다.

npr 보도에 따르면, 대법 판결은 늦어도 7월 중 나올 전망이다. 상황은 썩 낙관적이지 않다. 2018년 진보법관 앤서니 케네디(Anthony Kennedy) 사임 이후 대법원은 보수 우위로 역전됐다. 에이미는 “새 대법관을 비롯한 보수 법관 중 누군가는 진실을 보고 합당하게 판결해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6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2013년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의 끝에 ‘삶은 모험이고,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썼지만, 이제 거기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며 이렇게 썼다. “나는 미국이, 연방대법원이, 트랜스젠더 시민도 직장과 사회에서 차별로부터 자유롭게 살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리라 믿는다.”

미국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트랜스젠더 배우 라번 콕스(Laverne Cox)가 지난해 9월 에미상 시상식장에 동행해 화제를 모은 ACLU의 LGBT 프로젝트 법률팀 변호사 체이스 스트랜지오(Chase Strangio)는 ACLU 추도문에서 “에이미 팀의 일원으로 활동한 건 내 생애 가장 자랑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라며 “우리는, 수많은 트랜스젠더 시민들은, 그가 인도해준 정의를 향한 길을 끝까지 따를 것”이라 밝혔다. 그의 아내 도나는 “내 가장 좋은 친구이자 영혼의 벗(soulmate)인 에이미”를 응원해준 시민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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