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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두 장벽의 피해자

입력
2020.05.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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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침목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27일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침목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인 팀 마샬은 저서 ‘지리의 힘’에서 “한반도는 지리상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태백산맥 등 크고 작은 산악지대를 피해 지형이 완만한 서쪽에 인구 다수가 모여 살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지금 임진강에서 동해안으로 이어진 155마일 휴전선을 따라 남과 북으로 분단돼 있는 게 더 엄혹한 현실이다.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에 따른 자연의 벽과 휴전선이란 인위적 체제의 장벽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

공교롭게도 이달 초 두 장벽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 줄지어 터졌다. 먼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고 각국 언론과 정보기관이 갖가지 추측을 쏟아낸 사건이다. 그가 20일 넘게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을 두고 치명적인 병에 걸려 누워 있다는 보도에서 후계구도 전망까지 ‘나가도 너무 나간’ 소설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보란 듯이 최고 지도자의 건재를 알린 북한은 이어 강원 철원군 중부전선 우리 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했다. 고의적이든, 우발적이든 마샬이 ‘위험한 약자’라고 한 휴전선 이북의 존재를 새삼스레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1일 밤 양간지풍(襄杆之風ㆍ강원 동부 산간지역에서 부는 국지적 강풍)을 등에 업고 맹렬한 기세로 타오른 고성 산불은 한반도 동쪽에 자리한 천연장벽이 만든 재난 사건이었다. 태백산맥을 넘으며 사나워지는 이 화풍(火風)은 영동지역 주민들에겐 숙명과 같은 존재다.

이처럼 강원 접경지역은 정치ㆍ지리적 장벽에 갇힌 이중 피해자다. 지난 70년간 남북이 화력을 겨누고 으르렁거릴 때마다 주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한때 서울 면적의 5배도 넘은 군사시설 규제에 그 흔한 기업 투자 유치조차 꿈꿀 수 없었다.

첩첩산중으로 가로 막힌 경제적 단절은 물론 불과 몇 시간에 축구장 1,000개 면적을 집어 삼키는 산불과 폭우, 폭설 등 자연 재해도 주민들을 괴롭혔다. 애처롭다 못해 가혹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이런 강원 접경지에 대한 중앙 정부와 우리 사회의 대접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는 남북 평화경제 중심지니, 북방교역의 전초기지니 하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 지난달 첫 삽을 뜬 동해북부선 철도 남측 구간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란 희망을 주기엔 부족했다. 변수가 많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불확실성이 너무 큰데다가 그 동안 수없이 귀가 닳도록 들었던 장밋빛 미래에 대해선 내성까지 생겼다.

되레 강원 접경지역 주민 입장에선 정부의 ‘국방개혁2.0’이 뼈아프기만 하다. 목이 터져라 외쳤던 규제완화는커녕, 먹고 살기 위해 기댈 수 밖에 없었던 군 부대마저 국방개혁 2.0이란 이름 아래 갑작스레 떠나고 있다. 막막할 수 밖에 없다. 절박한 심정에 국방부로, 국회로 달려가도 “지역사회와 상생하겠다”는 공허한 답변뿐이다.

한반도에 평화시대가 오면 강원 접경지가 주목 받을 것이란 희망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희망을 얘기하기에 앞서 현실에 대한 해법이 필요한 때다. 정치권이 앞장 서 “도로 등 기반시설을 확충해주고, 군 부대 유휴부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박한 주민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평화경제 등 거창한 미래를 제시하면서 정작 접경지역에 소홀한 것은 심각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박은성 지역사회부 차장대우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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