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댓글’. 인터넷 시대의 신흥 짓거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그 장은 바로 공중 화장실이다. 인터넷처럼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정치적 이슈부터 은밀한 만남까지 되바라지게 표현하고 교류할 수 있었다. 요새 화장실 벽이 깨끗한 이유는 댓글 욕구가 사라져서가 아니다. 그곳에 앉아서도 댓글 달 곳이 따로 생겼기 때문이다.
30여년 전 입학했던 신학교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느 구석을 가도 아름다운 성가가 들렸고, 지나치다 사람과 부딪치면 ‘오 주여’ 혹은 ‘어머나 아버지’라는 희한한 언어가 튀어나왔다. 정말 신성한 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압권은 화장실이었다. 앉아서 화장실 벽을 보았는데 누군가가 볼펜으로 꽉꽉 눌러 이렇게 써놓았다. “주여 내게 힘을 주시옵소서.” 그 아래에 신학도들이 수많은 댓글을 달아 놓았다. “간절히 구합니다.” “내게도 내리소서.” “갑절로 내리소서.” “오늘은 응답하소서.” “할렐루야 벗어났도다.” 등등. 신학교의 화장실은 젊은 신학도들의 꽉 막아놓은 장난기도 속 시원히 배설할 수 있던 공간이었다. 신성(divinity)의 엄중함도 화장실 댓글만큼은 눈감아 주는 듯했다.
난 지금도 신학교에서 일한다. 침례신학대학교라는 곳인데 자랑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캠퍼스를 지녔다. 이 예쁜 곳이 요새는 좀 이상하다. 출근하면 꼭 예쁜 납골당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왁자지껄한 젊은 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을 부산스럽게 해야 할 텐데 그 친구들이 없다 보니 적막하고 생기가 돌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나 신학교 같은 종교 기구들은 유난히 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코로나가 물러나 까불고 사고도 치면서 교직원들을 괴롭히는 학생들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사실 신성의 엄중함이 눈감아 주었던 건 화장실이 아니라 젊음이었을 것이다. 대학생들은 대부분 어리다. 군대를 다녀와 아저씨 같다는 복학생들도 그저 이십대 중반쯤이고, 대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이십대 중후반인 경우가 많다. 중년의 나이인 나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묘하게 가슴이 설렐 때가 있다. 그들의 무언가가 부럽기도 하다. 젊은 학생들의 왕성한 체력? 나는 거의 다 잃어버린 무성한 머리카락?
의외의 답이지만 나는 젊은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 ‘불안함(insecurity)’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들은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흰색 도화지 같다. 그 위에 무언가를 그리려고 막 연필을 갖다 댈 때 느끼는 설렘과 떨림. 인생의 여정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미래도 이젠 고정되어 버린 듯한 어른들은 가지기 어려운 설렘이다. 이제 막 본격적으로 인생을 살아가 보겠다고 나서는 그 풋풋함이야말로 참 신성하다. 그들을 조력할 신학교 선생이어서 그런가?
대 사도 바울은 인생을 살 만큼 살면서도 그 설렘을 놓치지 않고 살았다.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빌립보서 3:12-14)
그가 남긴 서신들이 기독교 신학의 초석이 되었기에 바울은 누구보다도 확신이 가득한 사람 같아 보인다. 하지만 바울은 평생 단 하나 말고는 확신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리스도께 잡혔다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웬만큼 다다랐다 하여도 그는 주저 없이 저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인생길 앞에 흰색 도화지를 펼쳐 놓았다. 부럽고 존경스럽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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