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하던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직격탄을 얻어맞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이번엔 수장의 ‘가벼운 손가락’에 또 한 번 술렁였다. 구자철 KPGA 회장이 취중에 상대적으로 많은 대회와 상금규모를 갖춘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후원기업들을 저격하는 듯한 글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기면서다. 구 회장은 하루 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게시물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구 회장은 25일 오후 8시쯤 자신이 운영하는 SNS 인스타그램에 KLPGA만 후원하는 기업들을 언급하며 다소 격한 표현이 담긴 게시글을 남겼다. 그는 여자골프대회만 후원하는 기업을 향해 “너네 다 죽었어”, “남자프로 공공의 적”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구 회장이 직접 올린 이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지만, 이를 갈무리한 사진이 골프계 안팎에 퍼지며 “KPGA에 대한 애정이 과한 데서 온 해프닝”이라는 의견과 함께 “선을 넘었다”는 비판도 얻었다.
특히 KLPGA 후원 기업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기업인으로서의 동업자 정신도 잃은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구 회장이 언급한 기업들은 이번 시즌 KLPGA 투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한화클래식,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S-OIL 챔피언십, OK저축은행 박세리인비테이셔널을 개최 예정인 기업들이다.
이번 논란은 최근 고위관계자 지인으로 알려진 두 명의 직원을 채용 공고도 없이 단 한 번의 면접만으로 특별채용(본보 5월 23일자 20면)하며 공정성과 투명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벌어졌다. 특별채용 논란 당시에도 구 회장은 SNS에 채용 과정에 대한 비판을 뒤로한 채 “(기존엔 급여가 지급됐던)수석부회장이 무급여 봉사이기에 그 예산으로 사원 2인 정도는 새로 뽑아도 될 듯하다”고 주장해 논란을 자처했다. 현재 해당 SNS 게시물 또한 삭제되거나 가려진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는 골프계 시선은 갈린다. KPGA 관계자는 “(구 회장이)잘 해보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와중에 술자리에서도 협회 생각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어 올린 게시물인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KLPGA보다 상대적으로 후원이 적은 KPGA 회장으로서의 고충이 큰 것 같다”면서도 “KPGA 수장으로서 언급한 내용으로는 도를 넘어선 수위”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구 회장은 자신의 SNS에 지난 게시물에 대한 사과 글을 올렸다. 그는 “저녁자리 내내 남자대회를 늘리기 위한 방안들을 상의하다가 조금 취했다”며 “제가 언급한 기업들은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고, 기회가 된다면 남자대회도 많이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KPGA는 다음달 1일 경기 용인시 플라자 컨트리클럽에서 코로나19 극복과 기금 조성을 위한 ‘KPGA 스킨스 게임 2020’을 개최하기로 했다. 총 상금 1억원이 걸린 이번 게임에는 지난해 제네시스 대상 문경준(38)과 2019년 상금왕 이수민(27), 2018년 상금왕 박상현(37)과 신인왕 함정우(26)가 출전한다. 팀별로 얻은 상금은 해당 팀 선수 이름으로 지정된 기부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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