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후 자금추적 등 검찰 수사 다시 들여다보기로
횡령한 돈 ‘정치권 구명 로비’에 사용했는지 추적할 듯
새로운 사실 드러나면 검ㆍ경 수사권 조정 유리한 국면
단군 이래 최대의 다단계 금융사기범죄에 대해 경찰이 최고의 수사인력을 동원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검찰에서 이미 수사를 끝낸 정치권 로비 의혹을 사실상 재수사할 예정이라, 수사결과에 따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일보 취재결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최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된 이철(55) 전 벨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의 사건에 대한 고발인 조사를 마쳤다. VIK 피해자들은 지난달 ‘수감 중인 이철 전 대표가 피투자기업과 공모해 VIK 돈을 빼돌린 의혹이 있다며 이 전 대표를 수사해 달라’고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지능범죄수사대는 검찰로 치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비견될 만한 최고의 수사인력이 포진한 곳이다.
이철 전 대표를 겨냥한 수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과거 검찰에서 이뤄진 수사는 전형적인 ‘봐주기’ 수사였다는 게 피해자들의 시각이다. 서울남부지검은 이철 전 대표를 수사하면서 그가 구속되기 직전인 2015년 8월까지의 범죄사실 위주로 수사를 해왔다. 그는 2015년 10월 7,000억원대 금융사기범죄로 구속기소 됐지만 2016년 4월 구속기간 만기로 재판 도중 출소했다. 2016년 9월 2,000억원대 범죄가 추가로 드러나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에서 기각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결국 희대의 금융사기범이 2018년 12월 법정구속 되기 직전까지 2년 8개월 동안 교도소 밖에 있었다. 1조원대 사기꾼이 감옥에 있기는커녕 장기간 시내를 활보한 셈이다.
그는 유망중소기업에 투자해 수익금을 돌려주겠다며 마구잡이로 돈을 끌어 모으는 ‘돌려막기’ 수법으로 3만명에 가까운 피해자를 양산했다. 최근 미공개정보 이용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문은상 대표의 신라젠도 VIK가 투자한 기업 중 한 곳이다. 이철 전 대표는 ‘7,000억 사기사건’에선 징역 12년이 확정됐고, ‘2,000억 사건’은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이 선고된 상태다. 그는 최근 불거졌던 ‘검언 유착’ 의혹 사건에서도 대리인을 통해 언론사 기자들과 접촉한 인물로 등장해 구설에 올랐다.
경찰 수사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발장에 따르면 VIK는 2012년 7월과 9월에 3억5,000만원을 VIK로부터 투자 받은 기업의 경영진 계좌로 송금했고, 이 돈은 곧바로 이철 전 대표의 개인계좌로 이체됐다. VIK의 법인 돈이 피투자기업을 매개로 이철 전 대표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VIK 피해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이철 전 대표가 빼돌린 돈이 많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VIK에 대한 검찰의 계좌추적이 2015년 8월까지만 이뤄졌던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가 이후에도 VIK를 계속 이끌어왔기 때문에 자금흐름을 추적하다 보면 추가범행이 드러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전망한다. 실제로 검찰 수사자료와 판결문만 봐도 회삿돈 427억원의 사용처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철 전 대표의 정치권 로비 의혹은 경찰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참여정부 시절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김창호씨에게 불법정치자금 6억2,900만원을 건넨 사실만 드러났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친노 인사들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당 창당멤버이자 ‘노무현 정책학교’ 출신이라 평소 여권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은 이철 전 대표 초청으로 2012~2014년 VIK 사무실에서 다단계 모집책들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이와 관련해 VIK 피해자들을 대변해온 이민석 변호사는 이철 전 대표가 재판 도중 석방된 2016년 4월부터 법정 구속돼 다시 수감된 2018년 12월까지의 기간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중형선고와 추가수사를 우려해 필사적으로 ‘구명 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여권의 힘이 가장 강했던 시기라 정권 핵심인사들에게 각종 청탁을 시도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인사들도 경찰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이철 전 대표가 여권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건 맞지만, 그가 VIK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는 박근혜 정부 때라 현실적 필요에 의해 친박(親朴) 인사들에게도 접근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번 수사를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전직 경찰 고위 관계자는 “경찰 수사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면 검찰이 과거 부실수사를 했다는 것을 의미이기 때문에, 경찰로서는 1석2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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