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가사ㆍ과장된 안무로
2017년 발매 당시엔 혹평 일색
최근 조롱ㆍ희화화 소재로 재발굴
대중 인식 바뀌며 인기 역주행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 재평가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가수 비. MBC 방송 화면 캡처

발매 당시 혹평을 면치 못했던 가수 비(본명 정지훈ㆍ38)의 노래 ‘깡’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깡’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매일 수십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2년 반 만에 1,000만뷰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깡’ 관련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이나 행동 등을 모방하거나 재가공해 올린 이미지나 영상) 영상도 인기다. 매일 한 번은 반복적으로 ‘깡’ 뮤직비디오를 본다는 뜻의 ‘1일1깡’, 노래 안무나 의상, 랩 등을 따라 하는 ‘깡 챌린지’ 같은 신조어까지 생겼다.

‘깡’ 뮤직비디오는 22일 오후 4시 현재 유튜브에서 조회수 986만회를 기록했다. 댓글도 10만개가 넘었다. 발매 당시 음원 차트 상위100위 안에 들지 못했던 이 노래는 21일 처음으로 음원 서비스 멜론의 일간 차트 97위에 올랐다. ‘깡’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으로 시작한 각종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게시글, 댓글은 ‘밈’놀이의 소재로 바뀐 지 오래다.

‘깡’은 비가 데뷔 15주년을 맞아 2017년 12월 내놓은 미니앨범(EP) ‘마이 라이프 애’의 타이틀곡이다. 발매 당시에는 주목 받지 못했지만 1년여 뒤 유튜브와 인터넷 게시판 등에 이 곡의 시대착오적 가사와 의상, 과장스러운 안무를 꼬집거나 희화화한 영상,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곡에서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 / 날 못 잡아 안달이 나셨지 / 귀찮아 죽겠네 알다시피 / 이 몸이 꽤 많이 바빠 / 섭외 받아 전 세계 왔다 갔다’라며 과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가사와 힘과 박력만을 강조한 안무로 조롱의 대상이 됐다. 원곡보다 패러디 및 커버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역으로 원곡 ‘깡’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깡’과 함께 ‘슈퍼맨’ ‘차에 타봐’ 같은 실패작도 재조명됐다. 최근 들어선 매일 한번 ‘깡’ 뮤직비디오를 찾아본다는 ‘1일1깡’이라는 신조어까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가수 비. MBC 방송 화면 캡처

정부 기관이 ‘깡’ 인기에 편승하려다 헛발질을 하기도 했다. 통계청이 지난 1일 ‘깡’ 뮤직비디오 영상에 “통계청에서 깡 조사 나왔다. 2020년 5월 1일 오전 10시 기준 뮤직비디오 조회수 685만9,592회, 39.831UBD다”라고 댓글을 쓴 것이다. ‘UBD’는 비가 주연으로 출연한 2019년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관객 수(17만명)를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로, 흥행 참패를 조롱하는 뜻으로 쓰인다. “공공기관이 이처럼 조롱의 뜻을 담은 용어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통계청은 공식 사과까지 했다.

‘1일1깡’ 신드롬은 비가 지난 16일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면서 급속도로 확산했다. 과거 히트곡을 춤과 함께 선보인 그는 ‘깡’에 대한 반응에 대해 “(요즘 젊은 층이 보기엔) 별로였던 것”이라며 “요즘엔 예능보다 제 댓글 읽는 게 훨씬 재미있다. 더 놀아주길 바란다”고 웃어 넘겼다. ‘휴깡은 있어도 탈깡은 없다’ ‘님아 그 깡을 건너지 마오’ ‘금연은 성공했는데 금깡은 도저히 못하겠다’ 같은 댓글을 가리킨 것이다.

그는 시청자를 향해 “1일 1깡은 많이 모자라다”며 “저는 주중에는 3깡, 주말에는 7깡하고 있으니 여러분들 좀 더 힘내달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삼은 동영상과 댓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에 네티즌들의 호평이 줄을 이었다.

가수 비 '깡'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팬덤 연구소인 ‘케이팝 레이더’ 데이터에 따르면 ‘깡’은 지난 13일 일간 뮤직비디오 조회수 차트에서 161위였으나 ‘놀면 뭐하니?’ 방영 직후인 17일 하루 동안 조회수 47만여회를 기록하며 16위로 뛰어 올랐다.

한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 PD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1일1깡’ 신드롬은 대중이 창조적으로 콘텐츠를 재해석하고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풀이하면서 비에 대해선 “가수로선 이미지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데 자신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며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켰다”고 평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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