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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보물 내놓은 간송미술관… 문화재 공공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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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보물 내놓은 간송미술관… 문화재 공공성 논란

입력
2020.05.21 20: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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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이 27일 케이옥션 5월 경매에 내놓은 보물 금동여래입상(오른쪽)과 금동보살입상(왼쪽). 케이옥션 제공
간송미술관이 27일 케이옥션 5월 경매에 내놓은 보물 금동여래입상(오른쪽)과 금동보살입상(왼쪽). 케이옥션 제공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으로 보물로 지정된 금동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놨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민간이 보유한 문화재의 공공성 확보 논란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어쨌건 개인의 사유재산인 만큼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 엇갈린다.

21일 케이옥션에 따르면 간송미술관은 설립자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이 수집해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던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2점을 27일 열리는 5월 경매에 내놨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 불상은 한국 불상의 특징과 변천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경매가는 각각 15억원씩, 합계 30억원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여러 가지 재정 문제로 인해 부득이하게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간송의 고액 소장품이 이렇게 경매에 나온 것은 1938년 서울 성북동에 세운 보화각(1971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 설립 이후 처음이다. 간송은 일제강점기 때 전 재산을 털어 일본에 유출될 뻔한 서화, 도자기, 고서 등 국보급 문화재 5,000점을 수집했다. 대표적 유물로는 훈민정음(국보 제70호),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국보 제135호) 등 국보12건, 보물 32건, 시ㆍ도지정 4건이 꼽힌다. 간송이 사후, 장남 전성우(1934~2018) 차남 전영우(80) 장손 전인건(49)씨 등 3대에 걸쳐 소장품을 지켜왔다.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 국보 제135호인 신윤복의 풍속도 화첩. 간송미술관은 2008년 신윤복 전시 이후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모았다. 간송미술관 제공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 국보 제135호인 신윤복의 풍속도 화첩. 간송미술관은 2008년 신윤복 전시 이후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모았다. 간송미술관 제공

간송미술관은 1971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두 차례에 걸쳐 무료로 전시회를 열어 대중들에게 소장품들을 공개해왔다. 이 때문에 미술계에서는 “간송미술관은 척박한 한국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는데, 그런 곳에서 작품을 경매에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자존심이 상하고, 안타까운 일”이라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술계에서는 80여년간 정부 지원 없이 운영해온 간송미술관이 재정적 한계에 부딪혔다고 보고 있다. 누적된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이란 재단으로 전환했고, 곧이어 초현대식 건물인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협약을 맺고 최근 5년간 대규모 소장품 유료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지원받으면 간섭도 받는다’는 이유로 그간 거부해왔던 ‘사립미술관’ 등록을 하기도 했다. 미술관 등록 덕에 정부는 현재 미술관 수장고, 대구미술관 신축에 국비와 지방비 등 약 4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간 누적된 적자, 2년 전 전성우 이사장 타계 이후 상속세 문제 등으로 재정난을 겪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경매 사실이 알려지자 간송미술관은 아예 공식입장문을 내고 “송구스럽고 불가피한 조치”라 한 뒤 “불교 관련 유물을 매각하고 간송의 상징이랄 수 있는 서화, 도자, 전적 중심축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금동불상 경매가 재정난 타계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보는 이들은 드물다. 서울 시내의 한 갤러리 대표는 “이번에 내놓은 불상 2점은 제 값을 받기 어려울뿐더러, 제 값에 팔린다고 하더라도 거액의 상속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라며 “추가로 다른 작품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간송 전형필의 생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간송 전형필의 생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간송 소장품들이 한번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 문화재 훼손 우려도 생기고, 개인이 소장할 경우 일반 공개가 어려워 감상은 물론 작품 연구도 버거워진다”며 “공공성을 감안해 정부가 지원,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민간 소유 문화재인 이상 여기에다 국민 세금으로 거액을 지원하는 건 맞지 않다는 얘기다. 당장 이번 경매에 대해서도 문화재청은 “해외 반출, 심각한 훼손 위기가 아니라면 정부가 경매를 통해 매입하는 건 어렵다”며 “국가지정 문화재들은 정기 검사 등을 통해 관리하고 있고, 특정 미술관에 대해 추가 지원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최열 미술평론가는 “간송 소장품이 경매에 나온 것은 너무나 참담하고 안타깝다”면서도 “소장자가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의 국가 기증을 통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 등이 이미 제안된 상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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