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주변 거리를 음식점과 주점 간판이 화려하게 밝히고 있지만 정작 오가는 이는 많지 않다. 서울 대표 상권인 이 지역은 평소 대학생과 직장인들로 붐볐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좀처럼 활기를 못 찾고 있다. 한 상인은 “손님이 돌아올 때까지 간판을 켜놓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60도 방향으로 거리를 여러 장 촬영한 뒤 합쳤다.
19일 밤 음식점과 주점이 밀집해 있는 서울 신촌 거리 모습.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폐업, 휴업이 가능한 집은 대형 프랜차이즈 직영점이나 기업형 매장뿐이다. 우리 같은 영세 상인들은 여기저기 묶인 게 많아 접고 싶어도 못 접는다”

18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10년 넘게 한식당을 운영해 온 김모(54)씨가 점포 옆 대형 상가의 빈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김씨는 “우리 같은 ‘을 중의 을’은 저렇게 비우고 떠날 수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명동 상권은 올해 초만 해도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을 이겨내며 회복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상권은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대형 화장품 매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그 자리엔 ‘임대문의’ 안내문이 나붙었다. 명동뿐 아니라 종로와 삼청동, 강남 가로수길 등 서울의 대표 상권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기는 영세 자영업자도 마찬가지지만 대형 점포처럼 문을 닫고 떠날 수도 없다. 폐업을 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점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날이 갈수록 손해만 늘어나는 통에 버티기도 쉽지 않다. 거리도 점포도 텅 빈 유흥가에서 간판만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서글픈 풍경 뒤에서 영세 자영업자들은 ‘끙끙’ 속앓이 중이다.

14일 종로의 한 상가 입구에 코로나 19 관련 문구가 담긴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18일 삼청동 상가 창에 임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억대 권리금 날릴 수 없어… 

“임대료 인하나 재난지원금 몇 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권리금 1억5,000만원 내고 들어왔는데 요즘 같은 때 이 돈을 내고 들어올 사람이 어디 있겠나.” 서대문구 신촌에서 닭 요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인규(64)씨는 “권리금을 일부라도 회수하려면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리금은 들고나는 임차인끼리 점포의 영업 시설과 고객 규모, 위치에 따른 이점을 돈으로 환산해 주고받는 대가다. 요즘처럼 경기가 나쁠 때는 상가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권리금 액수가 깎이거나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김씨 역시 투자한 권리금을 회수하려면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시설 원상복구에 대출 상환까지 

만만치 않은 원상복구 비용도 폐업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강남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34)씨는 “가게 시작할 때 인테리어와 간판에만 5,000만원 정도 들었다. 가게를 접으려면 이전 상태로 복구해 놓아야 하는데 이 비용이 초기 투자비용만큼 든다”며 “적지 않은 돈이 이중으로 드는 셈이라 폐업을 결정하기 쉽지 않다” 고 말했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 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 폐업을 하면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 투자금 회수도 어려운 판에 대출금을 갚으려면 다른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고금리 사채를 쓰고 있는 자영업자의 경우 파산할 가능성도 크다.

 ◇무조건 버티는 중 

신촌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 가게들이 매물로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사장님들이 이제 와서 가게 그만두고 새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32년째 대를 이어 이화여대 앞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조모(50)씨는 “소상공인들이 정부 정책에 의지를 많이 하는데 그저 먹고 살 수 있게만 해 주면 좋겠다.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버티지 못한 상인들은 모든 걸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서울 경복궁 인근 건물 외벽에 한복대여점 간판 흔적이 남아 있다.
유명 프랜차이즈 등 기업형 점포들은 폐업을 단행해 불황에 대처하지만 자본 여력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폐업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해 손해를 키운다. 최근 불경기에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명동, 삼청동 등 대표 상권 곳곳에 폐업하고 떠난 기업형 점포의 간판들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불황일수록 폐업은 줄어 

“지금도 힘들지만 그만두는 것은 더 힘들다”는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은 수치상으로도 나타난다.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개방’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한 2월부터 3개월 동안 서울 시내 음식점과 주점의 폐업 건수는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 유흥주점, 단란주점으로 등록된 업체의 폐업 건수는 4,151건이었으나 올해 3,866건으로 6.9%가량 줄어든 것이다. ‘불황이면 폐업이 증가한다’는 통념과 현실은 정반대였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연구위원은 “불황기 폐업 건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은 자영업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확충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이나 재취업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이 섣불리 폐업을 선택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이동진 문소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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