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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가봤다]5·18 잊혀져선 안 돼…알고 싶다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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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가봤다]5·18 잊혀져선 안 돼…알고 싶다면 이렇게

입력
2020.05.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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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의 ‘5·18 문외한’ 탈출기② 

 전시회서 국가 기록물과 광주 시민·외국인이 쓴 기록 보며 진실 접해 

 전문가 특강 통해 상처·후유증 극복 위한 공감의 중요성 깨달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역사마당의 쉼터를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으로 꾸몄다. 이혜인 인턴기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역사마당의 쉼터를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으로 꾸몄다. 이혜인 인턴기자

이전 기사 보기 ☞ 20대의 ‘5·18 문외한’ 탈출기① [인턴이 가봤다] 20대들, ‘5·18’을 언제까지 모를 거야…

태어나기 전인 1980년 일어났던 5·18 민주화운동을 유뷰트나 책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보니 또 다른 자료는 없을까 고민했다. 특히나 유튜브나 책은 하나뿐인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들이 너무 많아 도리어 더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책 말고는 접해 본 자료라고는 영화뿐인데.

그러던 중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 전시회’가 눈에 들어왔다. 13일부터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열린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은 5·18 기념재단과 전남대 5·18연구소,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행사였다. 특히 사상 처음에 일반에 공개되는 국가 기록물이 있기 때문에 당시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 생각해 당장 관람 예약을 했다.

단 준비가 필요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관계자의 해설 없이 혼자 관람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은 내용을 알아야 더 많이 보이고 재미 있다는 말 따라 벼락치기에 나섰다. 특별전 보도 자료와 안내 책자를 꼼꼼히 읽고, 영화 ‘택시운전사(2017년)’ ‘화려한 휴가(2007년)’를 다시 봤다. 그리고 책장 속 먼지 낀 교과서도 다시 꺼내 봤다.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전시관 밖에는 1980년 5월 당시 광주 시내를 본 떠 만든 6차로 도로가 자리하고 있다. 이태웅 인턴기자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전시관 밖에는 1980년 5월 당시 광주 시내를 본 떠 만든 6차로 도로가 자리하고 있다. 이태웅 인턴기자

전시 첫날인 13일 오전 박물관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전시관 밖 6차로 도로였다. ‘1980.5.18’, ‘1980.5.27’이 써진 기둥 사이로 외벽을 꾸민 흑백 사진을 보니 당시 광주 시내의 6차로라는 걸 알아챘다.

박물관 접수처에서 예약 확인을 하고 내부로 들어갔다. 1층 기획 전시실에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정부 기록물이 있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날짜 별 상황을 보여줬다. 그런데 국방부와 광주시·광주 동구청이 남긴 기록이 완전 딴판이었다. 

 광주시 “계엄군이 쏴서 시민 사망”·정부 “잘못 사격했을 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5·18 40주년 기념 전시회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국방부와 광주시ㆍ광주 동구청에서 만든 당시 상황 일지를 볼 수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5·18 40주년 기념 전시회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국방부와 광주시ㆍ광주 동구청에서 만든 당시 상황 일지를 볼 수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18일 첫날부터 그랬다. 광주의 기록에는 전남대 학생 200여명이 앉아 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했다고 기록했지만 정부는 계엄군과 투석전을 펼친 것으로 남겼다. 광주 시민들을 향한 총격도 마찬가지. 광주에서는 ‘드드드 총성이 들렸다’, ‘계엄군의 사격과 15세 남아 사망’으로 기록했지만 정부에서는 ‘총기 오인 사고’와 ‘진돗개2 발령(무장간첩 침공이 예상될 때 발령)’으로 적었다. 광주 내 시민들의 얘기를 ‘유언비어’로 파악한 정부의 모습은 계획적이고 치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공식 단어가 된 ‘5·18 민주화 운동’이 아닌 ‘광주 사태’라는 말과 ‘북한’, ‘폭도’라는 단어가 많이 보였다. 계엄군 행동에 당위성을 만들어 주는 기록이었다. 당시 국방부가 해외 홍보용으로 만든 ‘광주사태 진압’ 영상을 보면서 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5·18의 진실을 흐릿하게 하려는 시도들이 끊이지 않는지 어렴풋이 확인하게 됐다.

이번 특별전에서 최초로 전시된 국가 기록물이기 때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을 거라 내심 기대했지만 오히려 헷갈리기만 했다. 적어도 박물관 1층은 유튜브와 서점의 연장선이었다.  

5·18 40주년 기념 전시회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3층 전시관에서는 기록물뿐만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과 ‘국회 5·18 청문회 영상’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이태웅 인턴기자
5·18 40주년 기념 전시회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3층 전시관에서는 기록물뿐만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과 ‘국회 5·18 청문회 영상’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이태웅 인턴기자

3층 전시실에는 당시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걸 남긴 기록들이 있었다. 수 십 년 동안 꺼내지 못하고 서랍 속에 간직해 온 일기와 기자들의 취재수첩과 보도 통제를 사진으로 기록한 자료 등이 전시됐다. 

시민들과 계엄군이 금남로에서 대치하는 사진, 외국인이 다친 시민을 이송하는 사진 등 처음 보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종종 예습하며 봤던 사진이 등장하니 반가웠다. 미리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특히 사진 속 외국인을 보며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며 머리 속에 박힌 이름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생각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잠시 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눈 앞에 딱 나타났다. 힌츠페터가 공항 검색대를 지날 때의 회상이 전시관 벽에 글로 써있었다. “나는 필름을 큰 금속 캔 속에 포장해 과자더미 속에 숨겼다. 또 필름을 단단한 금속포장과 파란색 리본으로 화려하게 꾸며 선물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독일 NDR ARD TV 카메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잠시 후 전시관 한 쪽에 휑한 신문이 나타났다. 당시 정부가 직접 검열한 신문이었다. 나란히 전시된 초판에 표시된 수많은 엑스(X)들. 국내 기자들도 당시 상황을 취재했지만 정부가 보도를 막았다고 한다. 칠판에 보도 불가능한 내용과 가능한 내용을 정리한 사진과 정부의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 당시 기자들이 쓴 사표도 볼 수 있었다. 언론이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는 지금과 정반대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시민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남긴 기록들도 볼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해서 죽음의 늪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했다”(5월 19일 김현경), “얼어붙어버린 나 자신. 도저히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 (5월19일 이춘례)처럼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짐하는 목소리와 “영어는 믿어도 한국어는 못 믿는다”(5월 24일 주소연), “불순분자들의 난동이라니 그럼 내가 나도 불순분자인가”(5월22일 문용동) 같은 울분을 표현했다.

다행히도 전시관 3층에는 거짓과 날조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이 고스란히 있었다. 광주 시민들과 당시 광주를 경험했던 이들이 쓴 글에서 그날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교과서도 교사도 학생도… 5·18을 외면하고 있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는 출판사에 따라 5·18을 다룬 양이 제각각이다. 이혜인 인턴기자
중학교 사회 교과서는 출판사에 따라 5·18을 다룬 양이 제각각이다. 이혜인 인턴기자

이제 5·18에 대해 걸음마를 배워 첫 발을 뗀 듯 했다. 수준을 높여 보자고 마음 먹고 강의나 수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에서 5·18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먼저 교과서부터 확인했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에 ‘민주주의의 발전과 시민 참여’라는 단원에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잠깐 언급되는 게 전부였다.

중학교 교과서는 출판사마다 분량이 천차만별이었다. 5·18을 한 두 페이지로 담는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교과서에는 우리나라 민주 정치 발전에 기여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5·18이 빠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교과서에는 5·18에 대한 내용이 전체적으로 부족했다.

광주 교육청과 전남 교육청은 각각 2013년 8월, 2017년 9월 ‘5·18 민주화운동 교육 활성화 조례’를 만들어 학교 교육 과정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전남 교육청 관계자는 “5·18교육에 대한 성취도 평가 기준이 없다”며 “교육부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규정도 없어 소외 받고 있다”라며 답답해 했다.

5·18 기념재단은 전국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지만 이 역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교육부나 교육청 차원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라며 “교사들이 개인 차원에서 참여하기에는 한계가 크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상처와 후유증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을 공감하자” 

0 14일 서울 종로구 통인카페에서 김정인 춘천교육대 교수가 5·18 특별 강연 ‘나에게 다가온 5월이란’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연대 제공
0 14일 서울 종로구 통인카페에서 김정인 춘천교육대 교수가 5·18 특별 강연 ‘나에게 다가온 5월이란’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연대 제공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상황이 어떨까. 평소에 5·18을 배울 기회가 있을까 폭풍 검색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나마 해 마다 5·18 즈음에 곳곳에서 열리는 특강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참여연대에서 진행하는 김정인 춘천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의 특강을 듣기로 했다.

14일 저녁 강연장에는 20여 명이 모였는데 주로 40대 이상으로 보였고 20대는 기자뿐이었다. 김 교수는 특히 5·18을 겪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얘기했다.  강연 오기 전까지는 주로 5·18의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해 시간을 보냈는데 특강은 5·18 당시의 상처와 그 이후 이어지는 후유증이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지 그리고 왜 우리는 그들에게 공감하도록 노력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심지어 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 현장에서 무고한 시민을 죽인 뒤 그 죄책감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나 돌아갈래’라는 말과 함께 자살을 선택하는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트라우마의 또 다른 피해자인 가해자들의 마음을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나름 5·18공부를 부지런히 했다고 자신했지만 머리로만 알고 마음으로 알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김 교수는 5·18을 통한 공감의 교육에 또 하나의 비극이 추가됐다고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다. 5·18를 경험했던 세대의 2세들이 또 다시 국가의 배신을 겪으며 세월호 세대가 되고 말았다는 것. 김 교수는 “요즘은 5·18 강의를 할 때 학생들과 5·18세대와 세월호 세대가 함께 비극을 딛고 만들어갈 미래를 말한다”라며 “우리 모두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는 이유를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특강에 참석한 한 방청객은 “정권이 바뀌어 이제는 다행히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40년 동안 함께 노력해서 만든 변화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5·18왜곡 함부로 시도 못하게 된 것도 의미 있는 변화” 

1 14일 서울 종로구 통인카페에서 김정인 춘천교육대 교수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5·18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연대 제공
1 14일 서울 종로구 통인카페에서 김정인 춘천교육대 교수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5·18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연대 제공

강연이 끝난 후 김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20대들이 5·18을 잘 모르는 이유를 묻자 “자신이 태어나기 전 일어난 사건을 낯설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문제는 교과서를 통해 일의 맥락이 아닌 사건 자체만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5·18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가 이뤄졌으니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은 잊혀진 채 ‘승리의 역사’ 로만 기억하려는 분위기도 5·18을 더 알아보려는 시도를 망설이게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주변에는 5·18을 잘 모르면서도 섣불리 ‘종료’ 버튼을 눌러 버리려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에서 5·18 관련 진실을 가리려는 왜곡과 폄훼를 남발하는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이념 과잉의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에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자신의 잣대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물으니 김 교수는 “사실 일베(일간베스트) 같은 논란의 사이트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다소 뜻밖의 답을 전했다.

대신 김 교수는 “무엇보다 아무 말이나 너무 쉽게 내뱉는 것과 말하기 전 ‘과연 내뱉어도 될까’를 생각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라며 “여론을 신경 쓰면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아무 얘기나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왜곡과 폄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5·18의 또 다른 모습을 찾기 위해 다음은 광주로 

2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목적지인 광화문. 5·18 정신은 광화문의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2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목적지인 광화문. 5·18 정신은 광화문의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강연과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가는 길에 광화문 광장을 지나쳤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주인공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광화문.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들이 광장에 모인 것처럼 민주주의를 외치며 2016년 겨울 촛불은 든 사람들이 모였던 그 곳이다. 민주주의는 거리에서 거리로, 광장에서 광장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교수는 홀로코스트를 알린 ‘안네의 일기’와 많은 이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꼬마 상주 사진처럼 문화가 공감과 배려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의 상처는 광주 밖에 있는 시민들이 나서서 공감하고, 안아주고, 기억해 줘야 비로소 치유 될 수 있다”고 말을 맺었다.

알면 알수록 5·18은 언젠가 잊혀질 역사책 속 사건이 아닌 마음 속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반지원정대가 여정을 통해 생각이 바뀐 것처럼. 김 교수는 국립 5·18 민주묘지의 묘비에는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각자의 사연이 적혀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다른 얘기를 듣기 위해 광주를 가고 싶어졌다. 현재 진행형인 5·18을 만날 수 있는 장소, 광주. 다음 여정은 광주로!

5·18을 잘 모른다고 절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 궁금해 하며 던진 질문이 사과, 치료, 본격 교육으로 이었던 것처럼 5·18을 겪어보지 못한 지금의 20대가 조금씩만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게 바로 시작이다.

이태웅·이혜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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