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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가봤다] 20대들, ‘5·18’을 언제까지 모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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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가봤다] 20대들, ‘5·18’을 언제까지 모를 거야…

입력
2020.05.16 21:00
수정
2020.05.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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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5·18 문외한’ 탈출기①

학교에서 배운 게 없고… 몇 편의 영화로만 접한 게 전부

진실은 하나뿐인데 유튜브·서점에서는 되려 혼란스럽기만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13일부터 열린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기념 전시회에서는 국가 기록물과 당시 광주에 있었던 시민들이 남긴 일기와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13일부터 열린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기념 전시회에서는 국가 기록물과 당시 광주에 있었던 시민들이 남긴 일기와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택시운전사, 그 송강호 나오는 영화 봤었지. 얼마 전에 전두환 동상이 화제던데.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당시 노래던가? 아, 부모님이 경험담 들려주신 적 있는데.’

5·18 민주화운동이 올해로 40주년을 맞는다는 소식을 듣고 떠올린 생각은 이것들이 전부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할 때는 그래도 이것저것 외우고는 있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된 지금 도리어 형편 없어진 역사 인식에 부끄러워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능 이후에는 국사책을 펴보지 않았다. 현대사는 모의고사와 수능에 잘 나오지도 않았고 교과서 제일 뒷부분에 있으니 자세히 배우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5·18 기념재단에서 14일 발표한 ‘5·18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경우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은 92.6%로 높게 나타났지만, 5·18에 관한 구체적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처벌 받았다(41.1%), 해 마다 5월 1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36.6%) 그리고 국립 5·18 민주묘지에 대해 알고 있다(34.2%)는 부문에서 전 연령대의 평균 인지도인 58.1%, 40.8%, 53.0%에도 미치지 못했고,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독일 기자와 택시 운전사의 시선을 따라가며 광주의 아픔을 보듬는다.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는 독일 기자와 택시 운전사의 시선을 따라가며 광주의 아픔을 보듬는다. 쇼박스 제공

40년 전 5·18은 지금 청년세대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늘날 2030세대는 여느 때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고,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2016년 청년들은 당시의 무능한 정부에 분노했고, 촛불 시위에 나섰다.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는 매일 목소리를 내려고 사람들이 모인다.

물론 지금 청년들은 이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 민주주의와 자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닐 것이다.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5·18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게다가 5·18은 단순히 과거 사건이 아닌 같은 땅을 밟고 있는 누군가의 현재 진행형 아픔이다.

40주년을 맞아 ‘5·18 문외한’을 탈출하기 위해 하나씩 공부하기로 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반지 원정대가 반지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듯.  

“북한 군 소행”그럴듯한 유튜브 가짜 뉴스에 진실은 저 멀리로

유튜브에는 5·18에 대해 상반된 설명을 하는 영상이 섞여 있다. 출처 유튜브
유튜브에는 5·18에 대해 상반된 설명을 하는 영상이 섞여 있다. 출처 유튜브

5·18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켜고 있었다.  ‘5·18’을 검색하니 5~15분의 짧은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용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5·18은 북한군의 개입이 있었다’, ‘성역화된 5·18’라는 영상들이 63만 넘는 높은 조회수를 받은 것을 보고 클릭했다. 출연자들은 모두 5·18이 광주 시민이 아닌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 뉴스에서 허위 사실이라고 보도됐던 내용들을 버젓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고 있었다. 댓글도 극우 성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폭동이 아닙니다. 5·18 민주화 운동’, ‘5·18 민주화 운동이 폭력 투쟁이 아닌 공동체 정신인 이유’라는 제목을 단 영상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폭동’과 ‘선동’으로 덧씌워졌던 5·18의 진실을 알리려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하나의 사건을 너무나 다른 입장에서 다루고 있으니 진실을 알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중립을 지키는 듯 하면서도 가짜 정보를 담은 영상도 눈에 띄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이라는 제목을 단 영상은 5·18정신을 기리는 듯한 진지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 근거 없는 자극적인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시민들의 시위를 이끌었던 것이 북한군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5·18 기념재단의 ‘오일팔(5·18) TV’ 채널의 반박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이 주장이 왜 틀렸는지 알 수 없었다.

가짜 뉴스를 반박하려면 몇 배의 자료와 설명이 필요했다. 가짜 뉴스 영상은 근거 없이 입맛에 맞는 대로 쉽게 만들지만, 가짜 뉴스를 바로잡는 영상은 잘 아는 사람이 만들어야 하니 아무나 쉽게 만들기 쉽지 않아 보였다. 두 시간 넘게 여러 영상을 보니 진실과 왜곡이 머리 속에서 뒤섞였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법원이 “역사 왜곡” 판결한 저자 책도 버젓이 진열한 교보문고

12일 찾은 교보문고 광화문점 정치ㆍ사회 코너에는 ‘5·18 푸른 눈의 증인’과 ‘5·18 분석 최종보고서’가 나란히 진열돼 있다. 이태웅 인턴기자
12일 찾은 교보문고 광화문점 정치ㆍ사회 코너에는 ‘5·18 푸른 눈의 증인’과 ‘5·18 분석 최종보고서’가 나란히 진열돼 있다. 이태웅 인턴기자

다음 날인 12일. 서울에서 가장 큰 서점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갔다. 표현의 자유를 등에 업은 채 거짓을 꾸며 말하는 영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책이라면 전문가의 시선과 믿을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가 생겼다.

서점에 혹시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특별한 코너가 잊지 않을까 했지만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5·18 추천 도서 목록을 찾아본 다음 무인 검색대가 알려준 대로 정치∙사회 코너 ‘H’로 향했다. 

H코너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5·18 민주화 운동을 현장에서 봤던 평화봉사단 외국인 청년이 쓴 책 ‘5·18 푸른 눈의 증인’과 극우인사 지만원씨가 집필한 ‘5·18 분석 최종보고서’가 같은 판매대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진실은 분명하지 않으며, 두 개의 다른 입장이 대립 중이라는 점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교보문고 관계자는 “책 진열 권한은 전적으로 매장 직원에게 있다”라며 “특히 광화문 지점은 특정 책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독자들이 오는 곳이니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책을 전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언론들의 검증과 수많은 자료를 통해 해당 책 내용 중 상당 부분이 거짓이라는 점은 밝혀졌다”고 했다. 지씨가 ‘북한군 개입’의 근거로 내세우는 ‘당시 대법원의 교도소 습격설 판결’에는 명확한 오류가 있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게다가 책을 쓴 지씨는 2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을 ‘북한 특수군’이라고 비방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대형 서점이 그런 지씨가 쓴 책을 하나의 입장으로 ‘존중’해 팔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5·18 기념재단은 또 “아무리 왜곡된 내용이라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나라기 때문에 출판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며 “명예훼손죄를 적용시킬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사람을 적시하지 않으면 이 조차 적용이 힘들다”고 전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교보문고의 5·18 왜곡 서적 배치는 대중이 5·18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5·18 정신 훼손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망언 당시 당내 반발이 상당했던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파 논리와 관계 없이 사회적 금기로 합의 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책 중 당시 광주에 있었던 미국 평화봉사단원 폴 코트라이트가 쓴 ‘5·18 푸른 눈의 증인(한림출판사)’과 광주 시민과 내외신 기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아 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풀빛출판사)’를 샀다.

정해놓은 주장에 짜 맞추어 쓰인 글이 아닌 객관적 사실을 알고 싶어서다. 책을 읽으며 ‘만약 당시 내가 광주 사람이었다면’ ‘외부인으로 광주에 왔다면’ 어떻게 행동 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이혜인·이태웅 인턴기자

‘5·18 문외한’ 탈출기② 에서 계속 됩니다.

기사 보기 ☞[인턴이 가봤다] 5•18 잊혀져선 안 돼…알고 싶다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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