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니 한센인 구호품’ 불닭볶음면이 억울한 사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니 한센인 구호품’ 불닭볶음면이 억울한 사연

입력
2020.05.16 17:17
수정
2020.05.16 22:37
0 0
인도네시아 여성이 마트에서 불닭볶음면을 고르는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도네시아 여성이 마트에서 불닭볶음면을 고르는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한국인들이 선물한 검은 봉지가 인도네시아 한센인들을 아사 위기에서 구했다는 소식(한국일보 14일자 17면)이 알려지면서 후속 후원이 잇따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가 팍팍한 현실에서 선한 영향력이 ‘행복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구호물품에 포함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주목을 받았다. 4일부터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서쪽 탕에랑(탕거랑)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 1,458가구에 집집마다 전달된 검은 봉지엔 쌀 5㎏, 인도미(현지 라면) 20개, 마스크 4장, 손 소독제 100㎖ 1통 외에 불닭볶음면 4개가 들어 있었다. 이에 일각에선 하필 “한국인도 먹기 힘든 매운 음식을 왜 줬느냐”고 따졌다.

인도네시아 탕에랑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현지인들이 4일 한국에서 선물한 쌀과 라면을 집집마다 나눠주기 위해 검은 봉지에 담고 있다. 최영미씨 제공
인도네시아 탕에랑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현지인들이 4일 한국에서 선물한 쌀과 라면을 집집마다 나눠주기 위해 검은 봉지에 담고 있다. 최영미씨 제공

그러나 현지 식습관과 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빚어진 오해다. 불닭볶음면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래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한국 라면이다. 16일 인도네시아 대표 편의점인 인도마렛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불닭볶음면의 점유율은 10.3%로, 현지 라면인 인도미 등에 이어 전체 3위다. 4위 업체 점유율이 3.8%인 걸 감안하면 한국 라면이 현지 라면들과 더불어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농심 신라면은 점유율이 1.1%로 8위다.

인도네시아는 라면 소비량이 중국 다음으로 많은 세계 2위다. 2016년 특유의 매운 맛으로 현지 유튜버들에게 도전 과제였던 불닭볶음면은 이듬해 인도네시아 울라마협의회(MUI)에서 한국 라면 중에선 최초로 할랄(이슬람교에서 허용하는 제품) 인증을 받으면서 현지 판매량이 급증했다. 2019년엔 한인이 운영하는 현지 유통업체 헤온즈를 통해 4,500만개가량이 팔렸다. 현지에선 ‘삼양’이란 단어가 매운 맛의 대명사로 불리며, 붉닭볶음면을 흉내 낸 모방 제품도 나오고 있다. 내수 기업인 삼양식품을 수출 기업으로 키운 1등 공신이 불닭볶음면이고, 그 중 인도네시아 판매 실적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인도네시아 탕에랑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에서 한 한센인이 5일 한국인들이 선물한 쌀과 라면 등이 담긴 검은 봉지를 받고 있다. 최영미씨 제공
인도네시아 탕에랑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에서 한 한센인이 5일 한국인들이 선물한 쌀과 라면 등이 담긴 검은 봉지를 받고 있다. 최영미씨 제공

인도네시아인들은 한국 사람만큼이나 매운 맛을 사랑한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삼발’이라는 전통 양념은 지역마다 특산품이 있을 정도로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대개 매운 맛이 많다.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고추가 인도네시아산일 정도로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고추의 주산지”라며 “(현지인들이) 평소 단 음식을 즐기고 기후가 덥다 보니 매운 맛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닭볶음면이 인도네시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지만 개당 가격은 2,000원으로 현지 라면인 인도미(300원)보다 7배 가까이 비싸다. 한센인 등 가난한 사람들이 무턱대고 사먹을 수 있는 라면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센인과 빈민들은 이번에 한국인들이 선물한 검은 봉지 안에 불닭볶음면이 들어있는 걸 발견하고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시타날라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최영미(49)씨는 “불닭볶음면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식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불닭볶음면 유통업체인 헤온즈가 인도네시아 오토바이택시 기사들에게 불닭볶음면을 선물하고 있다. 헤온즈 제공
인도네시아 불닭볶음면 유통업체인 헤온즈가 인도네시아 오토바이택시 기사들에게 불닭볶음면을 선물하고 있다. 헤온즈 제공

불닭볶음면 현지 유통을 책임지는 헤온즈는 한센인 마을을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 말 취재를 위해 시타날라 마을을 방문했을 때도 아이들 공부방 한쪽에 불닭볶음면 상자가 쌓여 있었다. 이번에도 40개들이 150상자를 기부해 검은 봉지 안에 4개씩 넣었다. 이달 초부터는 코로나19 사태로 사람을 태울 수 없고 오직 물품 배달만 하고 있는 현지 오토바이택시 기사들에게 불닭볶음면을 나눠주고 있다.

최영미(오른쪽)씨가 지난해 11월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의 마을회관 마당에서 한센인의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붕대로 싸고 있다. 탕에랑=고찬유 특파원
최영미(오른쪽)씨가 지난해 11월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의 마을회관 마당에서 한센인의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붕대로 싸고 있다. 탕에랑=고찬유 특파원

시타날라 마을을 돕는 마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 보도 이후 배응식 전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인도네시아 지회장, 김재열 ㈜대경 대표, 김성현 STM그룹 대표 등이 후원에 동참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