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째 코로나19와 싸워온 4명의 신촌세브란스 감염내과 임상강사들
가족들에 얘기도 못하고, 일상 리듬 깨져도.. “환자 완치에만 집중했다”
또 다른 코로나 대비 위해 감염병 전문병원 짓고 전문 인력 늘려야
생활방역으로 전환되면서 다들 한숨 돌리셨나요.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사태로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온 분들 많으시죠.
하지만 여기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최전방에서 바이러스와 싸워온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의료진들이에요. 인턴 및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조윤숙(45), 손유진(35), 현종훈(34), 백예지(32) 감염내과 임상강사(전문의)는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던 2월 말부터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격리 병동에 배치됐어요.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24시간 병원에 살다시피 하며 5명의 중증 환자를 치료했고, 그 중 4명이 완치돼 병원을 떠났습니다. 폐암 말기 상태로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 한 명은 4월 초 폐암으로 사망했고요.
이태원 집단감염으로 지역사회 재확산 우려가 가시지 않으면서 임상강사들은 마음을 조이며 언제든 비상 근무체계로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 당시 중증 환자들이 격리된 병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의료진이 바라보는 코로나19는 어떤 병일까요. 12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의과대학 회의실에서 이들을 만나 지난 4개월, 하루하루 전쟁 같던 그들의 24시간을 들어봤습니다.
◇“24시간 비상 근무…감염될까 무서웠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근무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현종훈 임상강사(현)= “코로나19 확산 초기엔 병원이 원내 감염을 막는 데 집중했어요. 면역에 취약한 환자가 많으니 바이러스가 병원으로 유입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그러다 대구 지역감염이 일어난 후 의료 자원이 부족해 대구 환자들이 여러 지역으로 분산 배치됐어요. 우리 병원은 중증 환자 중에서도 제일 위중한 환자들 위주로 맡았고요.”
손유진 임상강사(손)= “처음엔 의사 한 명이 야간 당직을 섰는데요. 밤에 갑자기 환자의 상황이 나빠지면 방호복을 입고 병실을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다른 방 환자에게도 문제가 생기면 혼자 대처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의사가 2명씩은 근무할 수 있도록 업무를 조정했습니다.”
이후 의사 한 명이 24시간 내리 일하는 강도 높은 업무 체계가 구축됐다고 해요. 한 사람이 24시간 근무→24시간 대체휴가→12시간 근무하는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야간 당직은 2명, 낮 시간엔 2, 3명이 일을 하게 되면서 인력 구멍이 메워졌어요. 하지만 밤낮이 바뀌면서 생기는 체력 방전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의료진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긴장되는 환경에서 24시간을 내리 일한다니, 상상이 안 되네요.
조윤숙 임상강사(조)= “24시간 근무하다 보니 모든 일상적 리듬이 깨졌죠. 환자에 집중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잠자기도 부족해 개인 활동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습니다.”
현= “일반 환자 수도 줄이고 협진이나 개인적 연구 활동은 일체 중단했어요. 격리 병동에는 감염내과 교수 1명, 임상강사 4명, 호흡기내과 교수 1명과 간호사 20여명이 상주하며 일했습니다. 의료진 모두가 상당한 긴장감 속에 격리 병동의 코로나19 환자에만 집중했죠.”
-가족들의 걱정도 컸을 텐데요.
백예지 임상강사(백)= “저는 일반 환자를 진료하다 나중에 투입됐는데요. 일반 환자를 볼 때 부모님이 걱정을 하길래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투입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격리 병동에 가고 나서는 걱정시키기 싫어서 굳이 얘기를 안 했어요. 이 인터뷰가 나가면 이제 알게 되겠네요.”
조= “2월 말 중증 환자 2명이 온다 해서 자연스럽게 투입이 됐는데 부모님이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그런데 사태가 심해지자 걱정이 되시긴 했나 봐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빨리 씻으라면서 경계를 하긴 했죠.”
현= “초반엔 부모님께 말씀 안 드렸어요. 워낙 급하게 환자를 받게 돼 가족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거든요. 대구 환자들을 받기로 결정한 날 저녁 환자들이 올라왔어요. 낮에 부랴부랴 집에서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챙겨오고 주말 약속은 취소하고, 병원에서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바빴죠. 3월 중순쯤 넌지시 물어보길래 그때 얘기했습니다.”
◇완치돼도 영구 폐 손상? “상처 심하면 흉터 남는 원리”
아직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치료법이나 치료제는 없습니다. 바이러스 자체 특성도 치료 과정에 대해서도 예측이 어려운 만큼 여러 의료진의 판단과 협업이 중요했어요. 국내 최초로 혈장치료를 적용해 중증 환자를 완치한 성과를 낸 것도 신촌세브란스 의료진이 수차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이어간 결과죠. 혈장치료는 코로나19 완치자로부터 항체를 추출해 다른 중증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중증 환자들은 어떤 치료를 받았나요.
손= “기본적으로는 폐렴에 의한 중환자 치료와 같은 방식으로 치료가 진행됩니다. 폐렴 환자 치료 때처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칼렉트라’ 등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여러 약제들을 써보면서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 혈장치료로 넘어갔어요. 완치 판정의 경우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통해 음성이 나오면 24시간 뒤 한 번 더 검사를 합니다. 두 번 다 음성이 나오면 완치 판정을 내리죠. 퇴원한 후에도 외래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오도록 해 이상은 없는지 확인해요.”
조= “감염내과와 호흡기내과의 협력이 중요해요. 호흡곤란 증세가 오면 기도 삽관 및 기계호흡을 시켜준다든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어떤 시술이 언제 필요한지 논의해 적용했어요. 약제도 쓰고 혈장치료도 하고, 상태가 안 좋아지면 항생제도 추가했습니다. 여러 의료진의 판단과 다양한 시술이 하나가 돼 치료가 이뤄졌어요.”
-신촌세브란스에서 최초로 혈장치료를 시도해 완치 사례가 나왔죠. 혈장치료는 어떻게 적용하게 됐나요.
손= “혈장치료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때도 적용했던 치료법인데요.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트록시클로로퀸 등이 (코로나19에) 효과가 없어서 이전 사례를 바탕으로 논의해 혈장치료를 결정한 겁니다. 완치된 환자의 혈장에 있는 항체를 중증 환자에게 투여해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에요. 처음에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혈장치료 결과 바이러스 농도가 많이 낮아지는 걸 확인했습니다.”
-의료진의 시각에서 다른 감염병 바이러스와 어떻게 다른 것 같나요. 완치돼도 영구적 폐 손상을 입게 된다는 얘기도 있던데.
손= “폐렴 문제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심하면 흉터가 남듯, 코로나19로 인한 폐 섬유화(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현상) 흔적이 남는 경우가 있어요. 모든 감염병이 처음에 치료제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치료제가 아직 나오지 않아 염려되는 것일 뿐, 더 위험한 병이라기보다 앞으로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죠. 평소 지병이 없던 건강한 분이었다면 크게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 사실 아직 ‘이것이다’ 할 수 있는 치료법이 나오지 않아 말하기 조심스럽네요. 퇴원한 환자들은 주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오게 해 폐기능 검사 등을 시행하고 꼼꼼히 지켜봅니다.”
-감염내과는 평소에도 중증 환자들을 다뤄 긴장감 높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는 평소와 분위기가 또 달랐을 것 같아요.
백= “신종 감염병이라 몇 배는 더 긴장한 것 같아요. 보호장비를 똑바로 착용해도 감염될 수 있다 생각하니 매사 조심스러웠죠. 경미한 증상이라도 있으면 혹시 병원 내 전염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많았어요. 중간에 몸살 기운이 있어서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음성이 나왔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동료들에게 미안해 별별 생각을 다했죠.”
현= “우리가 확진자를 본다고 하니 은근슬쩍 우리를 피해 다니고 옆에 있기 꺼려하는 분들이 있었는데요. 저 스스로도 사람들을 만나는 게 괜스레 미안해 몇 개월 동안 개인 활동은 생각도 하지 않고 치료에만 전념했어요.”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현= “60대 어르신이 퇴원할 때가 짠했어요. 그 환자에게는 혈장치료뿐 아니라 중증 폐렴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했거든요.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심각했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말라리아ㆍ에이즈 치료제까지 투여했는데, 혈장치료를 받고 나니 서서히 좋아지더라고요. 중간에 인공호흡기를 빼고 어르신이 걷고, 말하는 걸 보는데 너무 기뻤죠.
격리 중이다 보니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인터폰으로 소통할 때가 많은데요. 인터폰 너머로 어르신이 “이 병원에 와서 살았지, 다른 데 갔으면 죽었을 것”이라면서 고마워하는데 고생한 보람을 느꼈어요. 퇴원 직전에는 교수님과 간호사들 모두 모여 환자와 사진도 찍었습니다. 기뻐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무거운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조= “할 일은 많은데 환자를 보기 전 준비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마스크 때문에 숨을 못 쉬고 땀이 나니 몸이 힘들었죠. 하지만 우리 몸 상태보다도, 무엇보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을 때는 우리 모두 마음이 아파 종종 울기도 했습니다.“
현=“2시간 이상 방호복을 입고 시술하면 탈수 증세가 올 수 있어 교대하라고 해요.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여도 어려운 시술인데 답답한 장비를 착용하고 시술하려니 더 어려웠죠. 그런데 내가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다음에 일할 사람이 좀 더 쉽게 환자를 챙길 수 있지 않겠어요? ‘좀만 더 좀만 더’ 하다가 나오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 있죠.”
◇“코로나 영웅, 메르스 의병… 늘 하는 일 했을 뿐…”
코로나19 완치 환자들이 늘고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의료진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확산됐죠. 국내에는 의료진에 수어로 감사 메시지를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가 확산하기도 했고요. 문재인 대통령을 시작으로 각 부처 장관, 기업가, 연예인까지 최전방에서 바이러스와 싸운 의료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습니다. 다만 완치 환자들을 내보낸 감염내과 임상강사들은 이 같은 응원 열기에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어요.
-코로나19의 ‘숨은 영웅’으로 떠오른 소감은 어때요.
현= “메르스가 확산했을 때는 ‘메르스 의병’이라 불렸어요. 하하. ‘고생했다’, ‘잘했다’는 칭찬이 감사하긴 하지만, 금방 잊혀질 것 같아요. 칭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늘 하던 대로 환자의 완치에만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감염병 관리에 필요한 자원을 미리 확보하고 종합적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메르스 사태 때도 감염병 전문 병원을 짓자는 얘기가 나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거든요.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만 반짝 역학조사관을 꾸리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꾸준히 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인력과 토대를 마련해야 하죠. 사스와 메르스, 코로나19까지 우리끼리는 감염병이 5년 주기로 온다고 얘기해요. 돌아보면 그 때마다 새로운 인력과 새로운 재료로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5년 뒤엔 또 어떤 병이 나타날지 모르잖아요. 국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체적인 시스템을 꾸려 항시 대비해야 해요.”
손= “사실 코로나19 업무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에요. 항상 병원에서 했던 일이고 감염의 위험은 늘 있었거든요. 다만 이번엔 전염률이 높아 좀 더 위험했다는 차이는 있겠네요. 코로나19에 대한 국민의 공포감이 크다 보니 많이 주목해주신 것 같습니다. 물론 칭찬과 응원은 항상 감사하죠.”
사실 감염내과는 의대생들에게 인기 있는 분야는 아니라고 해요. “업무가 강도 높고, 힘들고, 돈도 많이 못 벌기 때문”이랍니다. 감염내과는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 다양한 미생물에 의한 감염이 발생했을 때 원인균을 찾아내고 각종 약제와 항생제로 환자를 치료해요. 수술 등 칼을 대는 방식보다 항생제 처방에 중점을 두고 치료가 이뤄집니다. 그만큼 감염의 원인을 치열하게 파헤치고, 연구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탐구 과정이 요구되죠. 마치 탐정이 작은 증거들을 모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사건의 원인을 찾아 범인을 잡는 것과 비슷하죠.
-돈도 못 번다면서 감염내과는 왜 지원했어요.
손= “수술이 아닌 항생제를 써서 환자의 증상이 좋아지는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로웠어요. 감염내과는 환자들이 치료만 받으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거든요. 다른 내과와 비교해 추적 관찰을 하는 기간이 길지 않아도 되고, 항생제만 잘 쓰면 종종 완치도 빠르게 되는 것이 좋았죠.”
현= “어릴 때부터 국제보건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등 국제단체 활동을 지켜보다가 자연스럽게 에볼라 같은 감염병에 시선이 닿았어요. 나도 감염병을 다루는 그런 의료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원했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 주로 그려지는 의사들의 이미지는 차갑고, 냉철하잖아요. 후배들에게 윽박지르는 장면도 고정 레퍼토리입니다. 현장에서 의사들은 실제로 어떤가요.
손= “실수하면 내가 아닌 환자에게 피해가 갑니다. 예민하고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 만큼 우리도 혼나면서 배웠고요.”
현= “크게 혼나는 이유는 작은 실수가 환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될 수 있어서입니다. 언어 폭력을 당한다든가 부조리하게 혼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다만 사실을 적나라하게 지적당할 순 있겠죠.”
◇“가을 2차 대유행? 한번 겪었으니 대처는 더 나을 것”
-이태원 클럽발 재확산 문제부터 올 가을 2차 대유행이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세요. 잘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백= “집단 면역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 연구가 안 돼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변이 가능성도 있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요. 다시 발생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지금처럼 빠르고 투명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겠죠.”
조= “2차 대유행이 됐을 때 파급력이나 중증도는 아무도 몰라요. 독감처럼 앓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각한 폐렴으로 진행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백신이 나오면 계절성 질병처럼 유행할 수도 있고요. 어쩌면 이 병을 한 번 겪었으니 대처하는데 좀 더 여유로워질 수도 있겠네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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