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식료품부터 휴대폰까지 각양각색 소비
서울 병원비 못 내는 지방 환자들 “필요한 곳 못 써” 비판
대학생 김동현(22)씨 가족은 며칠 전 저녁 식탁에 둘러 앉아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을 놓고 ‘대토론회’를 열었다. “산 지 10년이 넘은 TV를 바꾸자”는 아버지의 주장에 김씨는 “나는 TV가 필요 없다. 25만원씩 똑같이 나눠 현금으로 주면 용돈으로 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갖고 싶었던 옷을 아버지 카드로 긁겠다”는 동생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어떻게 이 시국에 그 비싼 티셔츠를 사냐”며 화를 냈다. 김씨는 “아직 결론을 못 내렸지만 결국 어머니 뜻대로 식료품 구매 등 생활비로 사용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3일부터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시작하면서 위축됐던 경제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 당장 급한 식료품 구매, 교육비로 사용하거나 ‘위시 리스트’를 작성해 주머니 사정 탓에 구매하지 못했던 물품 구입에 나서는 등 사상 최초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따른 신풍속도가 펼쳐지고 있다.
14일 인터넷 카페 중고나라에는 재난지원금으로 구매가 가능한 TV, 노트북, 스마트폰, 리클라이너 등을 홍보하는 판매점의 게시글이 수백개 올라왔다. 주머니 사정에 전자제품 교체나 기호품 구매를 주저했던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직장인 이모(31)씨는 “돈을 좀 더 보태 아내 휴대폰을 새로 바꿀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김상준(29)씨는 “오늘 받은 지원금으로 그동안 못 간 헬스클럽을 등록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문화생활을 즐기겠다는 이들도 많지만 그래도 무게가 쏠리는 건 식료품 구매나 외식이다. 지난달 29일 리얼미터의 재난지원금 주요 사용처 설문조사에서는 51.5%가 식료품 구매에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동하(43)씨는 “지원금 80만원 중 다음달 아들의 영어, 피아노 학원비를 내고 남는 돈으로 외식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지역상권에 힘을 보태자는 재난지원금의 본래 취지에 맞게 ‘착한 소비’ 붐도 일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영인(57)씨는 “근처 대형마트에선 사용이 안 된다고 해서 가락시장을 찾았는데 주차도 생각보다 편해 더 자주 가기로 마음 먹었다”고 전했다. 직장인 이도헌(30)씨도 “날씨가 좋아져 백화점에서 운동복을 새로 구매할 예정이었는데 찾아보니 동네에도 재난지원금을 받는 스포츠브랜드 매장이 있어 그곳을 방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쓸 수 없고 거주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제한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대전시민 이선민(43)씨는 “중학생 아들의 인터넷 강의를 재난지원금으로 결제할 생각이었는데 온라인 결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왜 오프라인 학원은 되고 인터넷 강의는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 환자가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진 서울의 종합병원을 이용할 때도 사용이 제한되면서 “정작 가장 필요한 곳에 쓰지 못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신모(64)씨는 “남편이 고혈압과 당뇨로 3개월에 한 번씩 서울의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데 지역이 달라 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반대로 서울 양천구에 사는 최진원(49)씨는 “어머니가 계신 안산의 요양병원에 문의를 했는데 주민등록은 서울에 돼 있어 사용이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진료 항목에는 뚜렷한 제한을 두지 않아 성형외과ㆍ피부과 등에서 각종 미용 시술을 받는 데 사용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일각에서 재난지원금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대형 성형외과의원들의 재난지원금 사용 관련 광고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마스크 때문에 뒤집어진 피부관리랑 입술 필러까지 결제했다’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한 성형외과 정보를 공유해달라’ 등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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