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부족한 일손 채우기 위해 바빠진 농촌
정부·지방자치단체, 플랫폼 회사 등과 손잡고 도시 인력 유인책 마련 중
“농촌은 멀고 일은 힘들 것”이라는 도시 청년의 선입견 깨는 것이 관건
“우리 농장에 적합한 일손인지는 지금 따질 상황이 못 돼요. 한국어만 알아 들으면 일단 쓰는 거죠.”
경기 여주시에서 약 1만6,528㎡(5,000평) 규모의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곽윤호(60)씨는 답답해 했다. 지난달 2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손이 부족해 진 상황을 얘기하는 그의 얼굴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농사를 하던 분들이 이제는 70세가 넘다 보니 사다리도 못 타고 힘든 일도 못합니다”라며 “대신 힘을 썼으면 하는 젊은이들은 농촌에서 찾아 볼 수가 없죠”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곽씨 역시 ‘이제 일 못하겠다’는 생각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외국인 노동자를 찾게 됐다.
해마다 농번기면 많은 농가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귀농 귀촌 센터에서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신청해 모자 란 일손을 채웠다. 곽씨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농장 일을 위해 센터를 통해 확보한 10명 중 절반 이상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러나 올해 상황은 달랐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국내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났다. 그의 농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방역을 위해 출입국이 제한되면서 외국인 계절 근로자로 일을 하려던 이들도 한국 입국이 무기한 연기됐다. 농림부 관계자는 “하반기에 정상화 될 지도 미지수”라고 전했다. 곽씨는 “사실상 올해는 수확 시기가 다가와도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빌릴 수 없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렇다고 곽씨가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었다. 공식 절차를 통한 방법이 막히자, 4년 동안 매년 찾아와 알고 지내던 외국인 노동자 그룹과 중개 사무소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봤다. 그러나 마지막 방법도 실패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베트남으로 전부 돌아가 입국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6개월 단위로 교육을 받고 외국인들이 들어오는데 올해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며 “내년으로 넘어가야 외국인 인력을 구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다가오는 가을을 걱정했다. 몇몇 개인이 아닌 농가 전체를 심각한 분위기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우리 농촌은 ‘불법 체류자’라는 ‘마약’에 중독됐다”
농촌이 코로나19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데는 농가 일손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돼 있었던 탓도 크다. 농장주와 농촌일자리 구직자를 연결해 주는 농촌 일자리 플랫폼 푸마시를 운영하는 김용현 대표는 “우리 농촌은 불법 체류자라는 ‘마약’에 중독 됐다”고 말했다. 국내 농촌이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고, 그 외국인 노동자 중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라는 현실을 겨냥한 말이다.
그는 “고령화 된 농가의 부족한 일손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던 데는 외국인 노동자의 역할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불법으로 고용된 외국인과 근로기준법에 맞게 고용된 내국인의 인건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며 “농장주들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만 쓰려 하다 보니 농촌의 일자리 생태계가 지나치게 외국인 노동자로 쏠려 버렸다”고 설명했다.
실제 내국인과 불법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의 인건비는 큰 차이가 있다. 경북 김천에서 직접 농장을 경영한 이경하 푸마시 농장 코디네이터(매니저)는 “2018년 기준 농촌의 하루 일당은 내국인 8만원,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6만8,000원”이라며 “그냥 1~2만원 차이처럼 보이지만 한 번에 평균 15명을 부르기 때문에 농장 규모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작업 기간이 10일 이상 길어지게 되면 한달 평균 900만원까지도 차이가 난다는 게 이씨의 설명. 이런 금액 차이는 그 동안 농가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왔다.
정부가 쓴 임시 처방전…방문동거 외국인도 농촌서 일할 수 있게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진 농촌을 위해 정부는 긴급 인력 수급 방안을 마련했다. 먼저 기존의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나섰다. 정부는 3월 30일부터 방문동거(F-1) 비자로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5만7,688명에게 한시적으로 농촌에서 일하는 것을 허용했다. 원래 가족과 친척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외국인은 국내에서 일하고 돈을 벌 수는 없지만 이번에 90일 또는 6개월 동안 일할 수 있게 하면서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보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또한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온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기로 돼 있는 취업 대기자 3,925명 중 3,275명을 1년 미만 단기 근로 형태로 농축산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예정이다.
농번기에 큰 도움을 줬던 지방자치단체와 대학들의 농촌 봉사활동도 잇따라 취소되자 지난달 13일부터 일손을 더 많이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농촌인력중개센터를 당초 70개에서 92개로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그 운영비의 70%는 중앙 정부, 30%는 농협 중앙회에서 지원한다.
김정희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지자체와 공공기관 등과 손잡고 농촌 일손 돕기 운동을 펼칠 계획”이라며 “농번기 인력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모든 방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플랫폼 기업 손잡고 중간 수수료 없애는 실험 시작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공공기관들도 농가 일손 부족 문제를 풀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1일 농촌 초단기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늘어난 도시의 실업자들과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짝 지워 준다는 계획이다. 청년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농가에는 일손을 지원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으로 ‘농촌판 뉴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는 플랫폼 기업 푸마시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푸마시의 김용현 대표는 “서울시와 함께 다양한 직업 프로그램을 농촌 일자리 사업에 포함시키는 계획을 논의 중”이라며 “건강한 농산물 소비를 위해 농부들과 시장을 연결하는 사업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력 수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임금과 수수료 문제도 새로운 해법 찾기에 들어갔다. 기존에는 불법 인력 중개 사무소들이 중개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의 12% 이상을 중간에서 떼갔다고 한다. 때문에 농촌에서 일을 해도 가져가는 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때문에 서울시와 푸마시가 직접 나서서 중개 수수료 없이 필요한 곳에 인력을 보내는 방식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시의 계획에 농장주들은 환영이다. 특히 의사 소통이 자유로운 내국인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반가워했다. 지금까지는 농사 일에 익숙하고 일 잘하는 내국인을 찾기 힘들었지만, 청년 농부 육성 프로그램과 민간 인력 업체와 협력을 통해 내국인들의 숙련도를 빨리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곽씨는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동안에는 손짓, 발짓으로 눈치껏 의사소통 했지만, 내국인을 쓰면 훨씬 수월해 기술을 익히는 속도도 빨라지더라”고 전했다.
또한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 이전보다 힘 쓰는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크다. 곽씨는 “농번기나 장마철 같은 일시적으로 힘든 시기에 맞춰 투입되는 인력은 큰 도움이 된다”며 “대도시에서 사람이 와 준다면 농촌은 반가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농가들의 기대에 발맞춰 지자체들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외국인 노동자를 쓸 때와 비교해 내국인 근로자를 쓰면서 농장주가 부담해야 하는 추가 비용을 지자체가 대신 부담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경북 영주시에서는 1일 10만원인 인건비의 50%를 농가에 지원하기로 했다.
모든 답은 현장에…도시 청년의 농촌 적응 도와야 한다
전문가들은 농가 일자리 해결을 위해 초단기 대책도 필요하지만 코로나19 이후의 달라진 삶을 위해 농촌 인력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국 왕립농업대학 MBA 과정을 수료한 김용현 대표는 중장기적 대책을 만들지 못하면 농가의 일자리 불균형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농사일은 언뜻 봐서는 쉬워 보이기 때문에 사람만 구해다 주면 문제가 다 해결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며 “농촌을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좋은 일터’로 체질 자체를 탈바꿈시켜야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가 이런 지적을 한 이유는 그 동안 중앙 정부와 지자체들이 나름대로 추진했던 대책들이 기대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3년 동안 도시 청년들을 농촌에 보내왔다. 그러나 현장 관리와 사전 조사 실패로 농촌에 파견했던 인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단순히 인력을 파견만하고 이후 관리에는 신경을 별로 못 쓰더라”며 “도시에만 살다가 낯선 환경의 농촌에 보내진 청년은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만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가 현장에서 농장을 관리하고 파견된 인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농장 코디네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괜찮은 일터면 벌써 갔겠지”…청년들의 농촌에 대한 편견 깨기도 숙제
농촌에 대한 편견도 농촌 일손 문제 해결의 큰 걸림돌이다. 외국의 농장으로 떠나는 ‘워킹홀리데이’는 청년들이 당장이라도 가고 싶어하지만 정작 국내 농촌으로는 가기 싫어하는 게 현실이다. 외국 농장과 달리 국내 농장에 대한 편견이 유독 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농사일 체험에 대한 한국일보 보도(☞“넌 경쟁률 70대 1 알바에 맘 고생… 난 도시 옆 농촌으로 일하러”)에는 농촌과 농사에 회의적인 댓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는 곧 중노동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 농촌에는 다양한 일감들이 기다리고 있다. 각자의 체력, 성격, 농사 경험 등 여러 가지 고려해서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 농사’ 들이다.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현재 운영 중인 농촌 인력 중개 센터에서는 현장 투입 전 품종과 작업 종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작업 신청자는 원하는 노동 강도에 맞게 항목을 선택할 수 있다. 숙박과 식사, 교통 지원 여부 등을 알려줘 개인의 상황에 맞는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작업 시간에 대한 선택지들도 늘고 있다. 푸마시의 경우 농장주와 협의를 통해 하루 4시간부터 8시간까지 탄력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농사 경험이 풍부한 농부들도 초반 4시간이 작업 효율이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일하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농장주 입장에서도 인력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임금 지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들도 많다. 농장주들이 사람을 모집할 때와 다른 작업을 시키거나 일이 서툴면 폭언을 일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우려를 씻어내기 위해 농장 매니저가 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를 바로 해결하고 있다. 먼저 일하는 이들에게 최저시급 이상을 지급할 의향이 있고, 농장 내부를 사전에 공개할 수 있는 농장을 찾아 사전 검토를 한 뒤 일자리를 찾는 내국인과 연결해 준다. 만약 최저 임금 이상을 지급하지 않거나 임금을 아예 주지 않을 경우 당사자는 고용노동부를 통해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
또 하나. 농촌에는 흔히 생각하는 농사 말고도 온라인 홍보와 판매, 교육 분야 등 다양한 종류의 일자리가 있다. 원세연 경기사과사업단 대표는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도 중요하지만 농촌을 홍보하고 도시와 소통할 수 있는 역할도 필요하다”며 소통과 기술에 능한 인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덮친 참에’ 농업으로 다시 향하는 관심
이 참에 농업의 미래에 대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삶에서는 믿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농업에 대한 시각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농촌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측면에서도 1차 산업은 다른 산업에 못지 않게 확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산업별 취업유발 계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위는 농림수산품이 25.6명이다. 기타 서비스(23.3명), 음식점숙박 서비스(20.5명), 사업지원 서비스(17.9명) 관련이 그 뒤를 이었다.
위기에 처한 도시와 농촌을 구할 돌파구로 농업이 재조명되고 있다. 단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과제는 농촌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과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스스로 찾아 올 수 있게 만드는 프로그램, 경험을 원하는 청년들이 거리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도와 줄 교통편이 제공된다면 농촌 체험의 기회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상진 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도시 유휴 인원들이 농촌을 경험할 시간이 생긴 것은 긍정적이다”며 “앞으로도 공공 사업과 민간 기업을 통해 농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농림부와 민간기업들은 귀농귀촌 교육을 포함해 농장 매니저 교육, 사과 농장 장기 교육 등 신(新) 직업에 관한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여주=이태웅·이혜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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