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막대한 돈을 풀고 정부가 구제에 나서도 위기는 여전히 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폐쇄(셧다운) 조치 여파로 우리에게도 브랜드가 익숙한 미국의 유명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 위기에 처하고 있다.
◇글로벌 2위 렌터카 ‘허츠’ 파산 위기
9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차량대여업체 허츠(Hertz)는 4월 차량 대여 비용을 치르지 못하고 이달 들어 파산 위기에 몰렸다가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억만장자 칼 아이칸의 지원을 받고 간신히 채무변제 시점을 5월 22일로 미뤘다.
허츠는 이미 미국 직원 1만명 이상을 해고한 상태로 생존을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허츠는 변제 시점을 미루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연방파산법 11조에 따른 파산보호 신청을 검토하고 있었다.
영국의 브랜드 가치 평가기관인 브랜드파이낸스에 따르면 허츠는 엔터프라이즈에 이어 전 세계 차량 대여업체 가운데 브랜드 가치 2위의 기업이다. 허츠를 비롯해 차량 대여업체는 대부분 국제 여행객 수요에 의존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수요가 뚝 떨어지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허츠에 이어 브랜드 가치 3위인 에이비스(Avis)는 1분기 매출이 전 분기 대비 9% 급감하고 1억5,800만달러 순손실을 안았다고 밝혔다
◇유통업 ‘코로나 파산 1호’된 제이크루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착용한 것으로 유명해진 의류 브랜드 제이크루를 판매하는 제이크루그룹은 지난 4일 연방파산법 11조에 따른 파산 절차를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국적인 유통 브랜드의 첫번째 파산 사례다.
1983년부터 출발한 제이크루는 2011년에 사모펀드에 인수되면서 급격히 사세를 불리고 2015년에는 미국 500대 브랜드 안에 들었지만 부채도 그만큼 급격히 늘어났다. 최근에는 자매 브랜드 ‘메이드웰’이 인기를 모았지만 제이크루 자체의 판매량은 떨어졌고, 오프라인 유통 산업 전반의 후퇴에 따른 악영향도 받았다.
지난 7일에는 고급 백화점 체인인 니먼마커스(Neiman Marcus)가 파산보호 절차를 신청했다. 백화점 ‘니먼마커스’와 ‘버그도프굿맨’, 국내 직구족에게도 유명한 아울렛 ‘라스트콜’ 등을 거느리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인한 매장 폐쇄를 견디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오프라인 업장 ‘셧다운’은 온라인 유통의 성장으로 그렇잖아도 힘겨운 유통사들을 일거에 줄도산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1902년 설립돼 11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백화점 체인 제이씨페니(JCPenney)는 지난달 15일 채무상환 기한을 맞추지 못하고 30일 유예기간을 받은 상태다.
◇유명 기업 대규모 해고도 잇달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여객 운송업체들은 줄줄이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승차공유업체 우버(Uber)는 6일 전 세계 고용인력의 14%에 해당하는 3,700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라이벌 업체인 리프트(Lyft)의 직원도 1,270명이 해고당하거나 무급휴가 상태다. 이들은 차량 운행이 줄어들면서 피해를 보고 있다. 7일 우버가 발표한 1분기 실적은 29억4,000만달러(약3조6,000억원) 순손실이었다.
관광업계도 마찬가지다.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엔비는 직원 4분의1에 해당하는 약 1,900명을 해고했으며 기존의 업무 외에 추진하던 호텔ㆍ고급숙박ㆍ운송 등 신규 사업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세계 최대 규모 여행리뷰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는 미국ㆍ캐나다에서 600명, 그 외 국가에서 300명 등 전체 직원의 약 4분의1을 해고했다.
연방정부의 구제를 받게 되는 대형 항공사들은 구제금융 조건으로 당분간 직원 해고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주요 항공사인 델타항공ㆍ아메리칸항공ㆍ유나이티드항공은 현재 다수 항공편을 취소하고 인력 신규 채용을 중단한 상태인데, 유나이티드는 하반기까지도 경기 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일부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공언했다. 정부 구제금융을 피하게 된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자발적 퇴직과 이직, 비자발적 해고를 포함해 인력 10%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파산도 맘대로 못할 처지
현재 파산 신청을 한 기업들이 밟고 있는 미국 연방파산법 11조에 따른 파산보호는 엄밀히 말하면 기업의 끝이 아니다. 기업을 살려내는 기회가 되는 경우도 많다. 4개월 안에 채무자인 기업이 구조조정안을 제출해 채권단과 합의하면 된다.
하지만 180일이 지나도 구조조정안 협상이 교착될 경우 채권단은 파산법원에 청산명령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대표적으로 장난감 유통업체 토이저러스(Toys R Us)가 2018년 구조조정안 합의에 실패해 청산된 바 있다.
특히 오프라인 유통업체 입장에서 지금은 파산 절차조차 진행하기 쉽지 않다. 자산 일부를 청산하려 해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더라도 소비자들이 공포 때문에 쉽게 소비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제조업 등 다른 산업부문에서 발생한 대량 실업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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