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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근절하려면 잠입수사 뿐 아니라 온라인 수색도 허용해야”

입력
2020.04.30 04:30
수정
2020.05.01 10:0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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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정책연구원 좌담회

“초기 단계부터 범죄화로 철저히 근절해야”

[제2의 n번방 막아라]

<하>은밀한 독버섯 뿌리째 뽑아야

[저작권 한국일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소속 연구위원들과 본보 기자들이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연구원 회의실에서 텔레그램 'n번방' 사태 관련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소속 연구위원들과 본보 기자들이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연구원 회의실에서 텔레그램 'n번방' 사태 관련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물을 제작ㆍ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태를 계기로 한국은 성범죄의 새 국면을 맞닥뜨렸다. 디지털 성범죄는 익명성에 숨어 악랄하게 피해자를 착취하는 가해자들의 행태부터, 피해가 2차, 3차 이상으로 거듭될 수 있다는 점 등 범죄의 면면이 기존 성범죄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에 정부가 디지털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미진하다는 게 전문가 집단의 조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김대근, 김지선, 김한균, 윤정숙, 윤지영, 장다혜 연구위원은 20일 서울 서초구 연구원에서 진행된 한국일보와 대담에서 “N번방 사건을 근절하려면 잠입수사 뿐 아니라 온라인 수색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디지털 성범죄 수사기법 및 형사절차 변화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디지털 성범죄 수사기법 및 형사절차 변화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n번방’ 사태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적 측면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부가 잠입수사 허용 등 대안을 제시했는데 효과가 있을까.

(윤지영) “암호화, 익명화를 특징으로 하는 다크웹과 텔레그램이 등장하면서, 범죄 현장에 남겨진 흔적이나 단서를 토대로 범인과 증거를 찾던 과거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범죄가 디지털이라는 무대로 옮겨온 현 시점에서 잠입수사는 긴요하다.

독일과 미국은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수색과 네트워크수사기법(NIT)을 일찌감치 도입했다. 독일의 경우 일정 중범죄에 대한 온라인 수색을 허용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관이 직접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내기도 한다. 유럽에선 더 적극적인 차원의 잠입수사도 이뤄진 적이 있다. 2016년쯤 발생한 ‘한자마켓’ 사건이다. 한자마켓은 독일인이 운영하고 서버가 네덜란드에 존재하는 일종의 다크웹이다. 네덜란드 소재 사이버보안사 연구원이 우연히 한자마켓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서 수사가 시작됐는데, 네덜란드 당국은 한자마켓을 곧장 폐쇄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20여일간 한자마켓을 직접 운영하면서 이용자들의 유입 경로와 활동 방식 등을 파악한 뒤 일망타진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잔인한 범행에도 중형을 받지 않는 처벌 관행도 공분을 사고 있다.

(김한균)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n번방 관련 글을 보면, 게시자들은 단순히 대중적 분노에 영합한 엄벌주의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극심한 가해, 피해 현실을 경시한 과소 처벌이 범죄 만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자는 요구가 대부분이다. 여성변호사회가 2011~2016년 카메라이용촬영죄 판결을 분석한 결과 70%가 벌금형에 그쳤고, 양형위원회의 아동ㆍ청소년 이용 음란물죄 양형조사자료(2012~2018년ㆍ제 1심 징역형 선고 사건 1,891건)를 보면 아동ㆍ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한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사례는 전무하다. 느슨한 양형이 지속된다면 국민이 법과 형사소송 체계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마침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해 6월부터 이어 온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마련을 조만간 발표하게 됐다. 우려가 없지는 않다. 범죄 환경과 양상이 180도 변했지만 양형위의 양형 설정 방식은 지난 10여년 간 그대로인 탓이다. 양형위는 특정 범죄에 대해 전국 1심 법원이 판결한 2년 치 자료를 전수 조사 한 뒤, 형량값의 평균을 내고 이를 약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정한다. 과거 판결에 기반하기 때문에 양형 기준이 획기적으로 설정되기 힘들다. 감경 사유를 결정하는 방식도 다른 폭력 범죄 등에서 따르고 있다는 이유로 초범, 진지한 반성, 합의 등을 그대로 적용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정하는 데 국민의 상식을 반영하겠다고 하면, 국민이 생각하는 합당한 처벌이 어느 정돈지 제대로 물어야 한다. 공청회는 물론이고 여러 방면으로 국민 의견을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아동 및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법적용의 한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아동 및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법적용의 한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김지선) “검찰 구형과 법원 판결에서 명확한 법 판단도 필요하다. 아동ㆍ청소년을 이용한 성적 이미지를 제작ㆍ판매ㆍ유포해 2018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102건(공공장소 불법촬영 및 소지 범죄 제외)을 분석한 결과, 최고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는 아청법 11조가 적용된 판결은 41건(40.2%)에 불과했다(한국일보 4월28일자 1면). 아청법 대신 아동복지법 등을 우회 적용하고 이를 근거로 판단하다 보니 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도 매우 적었다. 아청법을 적용하더라도 초범, 진지한 반성 등의 이유로 감경되는 경우가 60%를 넘어선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해 체계적인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건을 유형화해 법 적용과 관련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온라인 그루밍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온라인 그루밍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정부가 아동ㆍ청소년을 길들이면서 동의한 것처럼 가장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처벌을 신설한다고 한다.

(윤정숙)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적 그루밍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가가 60개국 정도 된다. 영국은 2003년 성범죄법에 온라인이나 통신매체를 이용해 아동을 그루밍하고 아동을 음란물에 노출하거나 제작에 이용하는 행위를 포괄했다. 호주도 2017년부터 미성년자 온라인 보호법을 통해 16세 미만의 아동에게 전송서비스를 이용해 해를 입히거나 성행위를 하거나 성행위를 시도하고 계획하는 행위를 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그루밍은 성범죄 이전의 예비 행위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법조항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

온라인 그루밍은 특히 범죄 초기 단계부터 범죄화 하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그루밍의 단계는 보통 △피해자 선택 및 관계 형성 △비밀유지와 고립하기 △성착취 △지속적 성착취를 위한 통제의 과정으로 발생한다. 그루밍이 지속돼 이미 성범죄가 발생한 후 처벌하는 것보다, 성적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접촉을 시도하는 단계부터 차단해야 사실상 무한대인 피해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채팅애플리케이션 상의 데이트알바, 고수익알바 같은 성적 그루밍 목적의 메시지를 송신하는 행위부터 범죄화하는 것에 대해 논의해볼 법하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디지털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디지털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조주빈에 이어 강훈, 이원호 등 텔레그램 ‘박사방’ 주요 운영자들의 신상이 잇따라 공개됐다. 신상공개는 실제 재범 방지에 얼만큼의 효과가 있다고 보나.

(김대근) “n번방에 가담한 이들의 경우 신상털이를 두려워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박사방’ 운영자들의 신상공개는 어느 정도 범죄 예방의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아동ㆍ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자들이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은 전례를 봤을 때 공익이 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신상공개 자체가 처벌은 아니기에, 원칙적으로는 신중해야 한다. 신상 공개 자체의 효과로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을 꼽지만, 사실 여기에 얼만큼 기여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조주빈 처럼) 신상공개가 결정돼 포토라인에 서면서 자신의 주장을 여과 없이 선언하거나 스스로를 영웅화하는 문제 등도 고려해 봐야 한다.

(김지선) “성범죄자에 대한 형 선고 이후 이뤄지는 신상등록공개제도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한다. 한국에선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정도만 공개하지만, 외국은 해당 범죄자가 가입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메일 아이디 등도 공개하고 바뀔 때마다 재등록하게 한다. 디지털 성범죄 양상에 맞게 각종 신상 공개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할 것 같다.”

[저작권 한국일보]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이미지 이용 성착취 피해에 대한 보호 및 2차 피해 방지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이미지 이용 성착취 피해에 대한 보호 및 2차 피해 방지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디지털 성범죄에선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2, 3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장다혜)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피해가 사실상 끝없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성폭력지원센터를 찾는 피해자들 중에는 10여년 전 유포 피해를 당한 이들도 있다. 오랜 기간 유포가 거듭돼 온 탓에 피해자를 이용한 불법 영상의 조회수가 100만을 넘어서는 등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피해물을 초기에 삭제하고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 받기 위해선 신고가 적극 이뤄져야 하는데 피해자 다수는 알리기를 꺼린다. 피해자를 향한 비난과 낙인의 우려 때문이다. 신고를 했더라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일어나는 2차 피해가 우려돼 사법 처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2018년 연구원에서 실시한 온라인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적 이미지 이용 온라인 성폭력 피해사례 중 28.7%가 이러한 이유로 사법 처리를 포기했다. 심지어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 영상물을 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가 고소를 포기한 사례도 있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물을 반복 재생하지 않도록 절차 개발이 필요하다. 수사 보고서 및 평가서 작성을 하고, 이후 과정에서 피해물이 아닌 해당 보고서와 평가서를 기반으로 형사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겠다. 더불어 수사가 진행되는 동시에 피해물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포털사이트나 SNS 운영자들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이뤄졌으면 한다. 호주는 인터넷 안전 위원회 등을 만들어 운영자가 신고 절차를 마련하고 특정 키워드를 적극 규제할 수 있도록 한다.”

진행ㆍ정리=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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