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선거일인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서재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치러진 4ㆍ15 총선은 전에 없던 생경한 광경을 여럿 만들어냈다. 투표소마다 1m 간격으로 거리를 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고, 투표장에 들어서는 유권자들은 열을 재고 손을 소독한 뒤 양 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껴야만 했다. 전국 540만 학생들이 원격수업을 실시하고 기업 업무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실시되는 상황에서, 선거만큼은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소에 방문해 종이에 도장을 찍는 ‘재래식’ 투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3년 암호화폐 거래소 ‘BTC코리아’를 설립한 뒤 매각하고 이듬해 블록체인 기술 스타트업 ‘블로코’를 공동창업해 이끌고 있는 김종환(36) 상임고문은 “블록체인이 미래형 선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총선 일주일 뒤인 지난 22일 만난 김 상임고문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원격수업이나 원격근무와 같이 ‘원격투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모이지 않더라도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재택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엄정한 관리가 요구되는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원격으로 치를 엄두를 낼 수 있는 건 위ㆍ변조가 불가능하다는 블록체인의 장점 덕분이다. 김 상임고문은 “블록체인은 쉽게 말해 정보를 하나의 컴퓨터가 아닌 여러 대의 컴퓨터에 동시 저장하는 시스템”이라며 “조작이나 서버 과부하로 인한 데이터 유실 등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없기 때문에 선거에 활용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22일 경기 성남시 블로코 본사에서 김종환 상임고문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블로코 제공

예를 들어 국민들이 철저한 본인 인증을 거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투표하면, 이 정보가 선거관리위원회, 각 정당, 참관단 등 관련 기구가 각자 관리하는 서버에 동시 저장되면서 조작을 방지할 수 있다. 하나의 서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남은 서버 중 하나라도 무사하다면 정보가 통째로 날아갈 위험이 없고, 개표 과정 없이 투표 종료와 동시에 선거 결과를 알 수 있어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이번 총선처럼 긴 투표용지를 수천 명의 선거사무원이 손으로 분류할 필요도 없고, 방송사들이 수십억 원을 들여 출구조사를 할 이유도 없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작은 공공 단위에서부터 블록체인을 활용한 투표가 조금씩 활용되고 있다. 2017년 경기도 주민공동체 ‘따복공동체’는 주민제안 공모사업 온라인 심사에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김 상임고문은 “당시 공동체 815곳에서 9명씩 모두 7,335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즉석에서 투명하게 결과가 공개되며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201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가 해외 31개국에 거주하는 투표자 144명이 블록체인 앱을 활용해 투표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지난해에는 콜로라도주와 유타주가 해외 거주자 부재자 투표에 블록체인을 도입했다.

다만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라는 단단한 지반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군부독재 시절 ‘체육관 선거’로 대표되는 부정선거부터 최근의 ‘프로듀스101 투표 조작’ ‘미스터트롯 문자투표 서버 마비’ 등을 겪으면서 선거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활용에 미숙한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정보격차도 해소해야 할 과제다.

지난달 TV조선의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는 최종 순위를 결정하는 문자투표에 770만개 이상의 문자메시지가 쏟아지면서 담당 업체의 서버가 마비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방송 화면 캡처

김 상임고문은 때문에 당장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전국 단위 공직선거부터 블록체인을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단정했다. 특히 공공분야에서는 신기술에 대한 거부반응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상임고문은 “가깝게는 학교 학생회 선거나 음악방송 인기 투표도 소중한 투표 행위”라며 “서두를 필요 없이 일상 속 작은 선거에서부터 블록체인을 도입해 사람들의 신뢰 수준을 점차 끌어올리고 전자투표에 대한 익숙함을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간 분야에서의 발전이 공공 영역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에 더해 블록체인이 ‘믿을만한’ 기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정부의 다양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상임고문의 주장이다. 은행 앱을 설치할 때 다양한 백신과 공인인증서 설치가 의무로 지정돼 있듯이, 블록체인을 투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규제와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이나 의료 영역에 비해서는 투표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촘촘하게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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